“여러 재난영화의 오마주가 담겼다” 언론시사회 날 김지훈 감독이 한 말이다. 정직과 겸손의 발언이라기보다 자진납세에 가깝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어떤 영화들을 모범사례로 삼았는지 한 눈에 읽히니 말이다. 특히나 존 길러민 감독의 <타워링>(1974년)과는 여러 면에서 흡사하다. 이것을 과연 오마주라고 할 수 있을지는 관객의 판단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기존 재난영화의 문법을 너무나 성실하게 가지고 온 탓에 개성이 없다.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전형적이다.
이 작품에 출연 한 배우 중 그 누구도 호연을 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심하게 납작한 시나리오 안에서, 충무로 트로이카 설경구마저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 알다시피 설경구는 <박하사탕> <오아시스> 같은 영화들만 선택해 온 배우는 아니다. <해운대> <해결사> 등 순도 100% 오락영화에도 출연해 왔다. 그의 경쟁력이라면, 어떤 류의 작품에서든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줬다는데 있다. 그래서 <타워>에서의 설경구는 조금 낯설다. <타워>에서 설경구가 연기하는 영기는 설경구가 아닌 어떤 배우가 해도 큰 문제 될게 없어 보이니 말이다. 김인권, 차인표, 안성기 등 무게감 있는 배우들도 능력발휘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철저한 계산에 맞춰 소비된 느낌이다.
심심한 시나리오와 상투적인 캐릭터의 빈자리를 채우는 건, 다양한 볼거리다. CG로 구현해 낸 타워스카이의 모습은 실로 감쪽같다. 사방으로 솟구치는 화마와 여기저기에서 깨지는 창문 파편들의 모습도 생생하다. 불이 건물을 집어 삼킬듯 휘감는 장면에서는 100억 대작에 걸 맞는 위용을 보여준다. 개성 없는 이야기와 달리, 액션에 있어서는 독특한 연출도 보인다. 유리로 된 다리를 건너는 씬과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탈출 씬은 공들여 찍은 흔적이 역력하다. 덕분에 영화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루함을 안기지 않는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볼거리에 취해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하지만 알맹이가 알차지 못하다보니, 뭔가 허기진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 패스트푸드 음식과 참 많이 닮았다. 이것이 이 오락영화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2012년 12월 27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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