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데 강렬하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다. <남영동 1985>는 결코 에두르는 법이 없다. 러닝타임 대부분이 고문장면으로 채워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드라마틱하다. 하긴, 어느 날 갑자기 고문실로 끌려가 거짓을 종용당하는 일만큼 영화 같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실화라는 것 자체가 거짓말 같은 일이다. 거짓말 같은 역사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에 슬퍼할 일이다.
용감하게 기획된 영화다. 고문 경찰관 얘기를 다룬 소설 <붉은방>의 영화화가 외압에 의해 무산됐던 사례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소재의 민감성을 증명한다. 기획만큼 연출도 과감하다. 정지영 감독은 눈치 보는 법이 없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거침없이 밀어붙인다. 덕분에 관객은 영화가 상영되는 106분 동안 김종태가 겪는 공포와 수치심을 고스란히 간접 체험하게 된다. 카메라는 성기까지 드러낸 김종태의 전신을 담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고문당하는 자와 가하는 자의 얼굴을 시점숏을 통해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특히 희대의 고문기술자 이두한(이경영)은 저승사자의 다름 아니다. 그가 휘파람으로 부르는 ‘클레멘타인’은 그 어떤 장송곡보다 을씨년스럽게 다가온다.
정작 슬픈 건, 고문으로 생긴 몸의 상처가 아니다. 몸에 난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치유된다. 하지만 고문과정에서 격은 자괴감은 시간이 흘러도 마음에 남아 삶 전체를 뒤흔들고 파괴한다. 김종태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 역시 온 몸을 부르르 떨게 하는 전기충격이나, 폐에 침투하는 고춧가루가 아니었다. 그가 경계한 건, 물리적 폭력 앞에서 무너져가는 신념과 정신적 자존감이었다. 고문 앞에 굴복 당했다는 수치심과 자신의 허위 자백으로 동료가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자기혐오가 김종태를 극한의 고통으로 내몬다.
김종태가 생과 사를 오가는 그 시간, 바로 옆 테이블에 놓인 라디오에서는 프로야구 중계가 흘러나온다. 김종태의 비명 대신, 야구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스크린을 채운다.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 같다. <남영동 1985>가 안기는 무력감과 분노는 고문기술자와 수사관들의 모습에서 또 한 번 폭발한다. 여자 친구와의 애정문제로 고민하는 수사관, 프로야구 경기중계에 목매는 수사관, 빨리 일을 끝내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귀가하고 싶어 하는 수사관… 계급장만 떼고 보면, 그리고 이 곳 남영동에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란 사실만 빼면 이들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영화는 지속되는 고문 앞에 한 인간의 신념이 얼마나 훼손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이 폭력에 얼마나 무뎌질 수 있는가도 증명한다.
정지영 감독은 엔딩 크레딧에 또 다른 고문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담는다. 재야 민주화 운동 출신의 전·현직 정치인부터 영문도 모른 채 잡혀가 간첩이 되어버린 일반 고문 피해자들까지 다양하다. 그들의 인터뷰를 듣다보면 김근태 의원은 그나마 명예 회복의 기회를 부여받은 경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 그러니까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아직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숨어 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함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영화는 묻는다. 이 사람들의 남은 삶은 그 누가 보상할 것인가. 영화가 끝나는 순간, <남영동 1985>는 그렇게 다시 시작된다. 우리가 이 영화를 봐야 하는, 1985년도를 다시 불러내야 하는 이유다. 그 시절, 그 곳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진실규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응답하라 1985!
2012년 11월 23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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