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예찬은 계속 된다. 3박 4일 동안 부지런히 먹으러 다녔던 맛집 기행(奇行) <맛있는 인생>에 이어 군침 도는 강릉의 식도락은 여전하다. 이번에는 강릉과 서울을 여자와 남자로 치환해 장소를 캐릭터에 실었다. 주말마다 강릉을 찾는 영화 제작자 인성(김태우), 그리고 평일에는 고된 가정방문 간호사로 일하고 주말에는 그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 부지런히 서울로 향하는 유정(예지원)이 있다. 주말마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도시의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며 행복의 편린을 쫓는 사람들이다. 매주 잠자리를 찾아 헤매는 고단함은 여러 번의 망설임과 고민 끝에 주말 집 바꾸기로 해결된다. 마치 낸시 마이어스의 <로맨틱 홀리데이>처럼(영화에도 언급된다).
이 이상한 형태의 동거로 남녀는 서로의 취향을, 습관을, 분위기를 익혀간다. 영화는 제목부터 알싸한 로맨스를 기대하게 하지만 사실 그 로맨스가 시작되기 직전에 끝난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건 장작을 모으고 좀처럼 타오르지 않는 로맨스라는 연기를 지피는 과정이다. 이 과정 속에서 온갖 근사한 것들이 코스로 하나씩 올려 진다.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가 유정의 입을 통해 흐르는 순간이 좋지 않을 수 없다. 흰 눈이 나리는 풍광 사이로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읊조리는 장면이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마지막 장면, 강릉까지 한 달음에 달려가 만나는 낯선 남녀에게서 <봄날은 간다>의 실루엣이 어김없이 드러난다. 이 또한 좋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는 이렇게 오기가미 나오코의 포스터, 백석 시집, 유재하의 노래가 소품으로 불쑥 불쑥 끼어든다. 이 모든 근사한 것들의 아우라를 빌려 귀여운 반칙을 일삼고 있는 듯하다.
극중 별 반개를 준 평론가가 말했듯 자기 반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내가 고백을 하면>은 전작 <맛있는 인생>의 혹평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강릉이 배경이고 부지런히 먹으러 다니지만 여기에 기분 좋은 웃음이 배어난다. 전작들의 그림자로 인해 품게 될 일종의 선입견을 걷어내는 웃음이다. 영화사 대표 출신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선입견을 휘발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결과물이 담보되어야 한다. 조성규 감독은 <내가 고백을 하면>을 통해 첫 걸음마를 뗀 것 같다. 온갖 근사한 취향의 전시장이자 최대공약수를 마련하면서 자기 풍자는 스스로 상처받지 않을 만큼 양념으로 끼얹고 나이브함은 숨김없이 드러낸다. 홍상수 영화의 응석받이 막내 동생 버전을 보는 듯하다. 세상에 만년 루저란 없는 법이다. 영화는 9회말 2아웃의 난조에서 안타 한 방으로 실점을 만회한다. 극중 대사 그대로 충무로가 삼 세 판이라면, 여러모로 다행이다.
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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