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소재가 기발하다. ‘공소시효 만료 후 살인범이 참회서를 들고 나타난다’는 소재도 흥미롭지만, 그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더욱 재미있다. 주목할 건, 영화가 이 과정을 진지한 비판보다 코미디로 접근하고 있다는데 있다. 극적 긴장이 조성되려는 찰나, 난데없이 유머코드가 불쑥 끼어들어 긴장감을 와해시켜버린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구사하는 유머는 ‘좋고/나쁘다’의 영역이 아니다. 그건 ‘취향의 범주’에 속해있다.
조․단역 캐릭터들의 쓰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건,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나사 하나 빠진 듯한 불균질함이다. 한 가지 장면을 빌어 소개하자면, <내가 살인범이다>는 시체를 차가운 땅속에 파묻으며 무게 잡던 살인범이 갑자기 나타난 경비원에 깜짝 놀라 줄행랑치는 그런 영화다. 결국 감독이 구사하는 B급 정서가 취향에 맞는 관객들에게 <내가 살인범이다>는 119분이 유쾌한 오락영화다. 그 반대의 관객들에겐? 과잉된 유머로 헛웃음을 유발하는 ‘괴작’ 혹은 ‘망작’일 수 있다.
<내가 살인범이다>는 <우린 액션배우다>로 주목받은 정병길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액션스쿨 출신 감독답게 그의 장기가 가장 빛을 발하는 지점은 액션이다. 원 테이크 원 컷으로 멋들어지게 찍어낸 오프닝 추격 시퀀스를 시작으로 영화는 쉼 없이 달린다. 작은 액션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치고, 달리고, 내리 꽂고, 부수고, 뒹굴고. 눈이 즐겁다. 특히 달리는 차량 본네트 위에서 구현된, 날 것 그대로의 카체이싱 액션 시퀀스는 박진감 넘치는데 창의적이기까지 하다. 올해의 액션 시퀀스 후보로 손색이 없다. 다만, 영화 엔딩까지 화려한 액션으로 마무리하고자 한 강박은 아쉽다.
<내가 살인범이다>에서 가장 아쉬운 건, 영화가 사회시스템을 바라보는 가벼운 시선이다. 사법제도의 모순, 외모지상주의 폐해, 시청률에 혈안이 된 미디어 등 풍자하고 싶어 하는 가짓수는 많은데, 정작 그 방식이 너무 납작하다. 설정은 과장됐고, 상황 연결은 작위적이다. 이 과정에서 영화가 얻을 수 있었던 진정성은 휘발되고, 오락성만 남았다. 설득력도 훼손당했다. 감독은 “무거운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풀었다”고 했지만, 해학과 가벼운 웃음은 엄연히 다르다. “조금의 지루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내가 살인범이다>를 해학과 가벼움 사이 어딘가에 아슬아슬하게 놓이게 했다. 감독의 시선이 조금 더 치열했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영화가 품고 있는 몇몇 장점들이 매혹적이기에, 빈 구멍이 더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2년 11월 8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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