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퍼>는 익숙한 타임슬립 장치를 장착하고 장르를 이종교배했다. 타임슬립물은 따지고 들면 대개 허점을 드러내기 쉬운 장치다. <루퍼> 또한 시간여행의 논리적 허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논리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루퍼>는 이야기의 재미를 해치지 않는 정도의 적당한 얼개로 시간여행의 법칙을 짜고 드라마를 밀어붙인다. SF의 외피 속에서 액션과 드라마가 합을 이루면서 말이다. 드라마는 <인셉션>의 조셉 고든 레빗이 맡고 <다이 하드>의 브루스 윌리스가 전매특허 액션을 구축한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라는 동일인물이 전혀 다른 장르 안에서 두 가지 재미를 뽑아낸다. 여기서 SF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는 이 두 장르를 연결하는 아교 역할을 할 뿐이다. <브릭> <블룸 형제 사기단>으로 입지를 고취시킨 라이언 존슨은 세 번째 장편 <루퍼>로 이종 장르의 유희를 재확인한다.
영화를 보면서 성공한 타입슬립물이 여럿 연상되는 건 당연하다. <루퍼>는 고전이 된 로버트 저메키스의 <백 투 더 퓨처>의 코미디나 <터미네이터>의 비장함과는 궤를 달리 한다. 하지만 이야기적인 면에서는 <터미네이터>를 역이용한다. 미래의 영웅을 구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렀던 <터미네이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미래의 악당을 죽이는 것을 동력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현재의 나 또한 미래의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달린다. 이 모든 추격과 암살 작전은 어느 시점에서 결국 살리기 위한 대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영리한 드라마다.
20세기의 타임슬립에서는 선악이 명징했다면, 21세기의 <루퍼>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라이언 존슨이 직조한 상상력이란 낯선 것이 아니다. 신선함과 진부함이란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점에서, <루퍼>는 그 한 장이 신묘하게 얹혀 있다. 특히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미학적인 폭력 씬이 하이테크로 흘러가는 액션드라마의 격을 한 차원 끌어올린다. <루퍼>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타임슬립물이지만 CG와 미술로 미래적 분위기를 전시하는데 관심이 없다. 황량한 디스토피아의 풍경 속에서 SF를 무기로 달리는 액션 드라마, 고풍스러우면서도 근사한 오락영화의 탄생이다.
2012년 10월 9일 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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