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궁금할 수 있다. 무대에 최적화 된 연극을 굳이 스크린으로 만나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해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폴란스키의 첫 코믹 도전작이라는 점, 그리고 조디 포스터, 존 C. 라일리, 크리스토퍼 왈츠, 케이트 윈슬렛 네 연기파 배우의 민낯에 가까운 연기를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만으로도 감상의 이유는 충분하다.
두 소년이 싸웠다. 한 소년의 앞니 두 개가 부러졌다. 가해자의 부모와 피해자의 부모가 만난다. 나름 교양을 갖췄다고 자부하는 부모들이다. 이들은 최대한 원만하게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우아하게, 지식인답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숨겨왔던 본능이 튀어나온다. 서로에 대한 인식 공격은 물론, 육탄전도 불사한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진 형국인데, 여기에 부부싸움까지 가세하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연출된다.
영화의 시간은 실제의 시간과 똑같이 흐른다. 오프닝과 엔딩만 제외하면 그렇다. 이야기도 원작 희곡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폴란스키는 원작을 뒤틀거나 재해석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매력은 다분히 연극의 매력과 일맥상통한다. 매력의 중추는 가식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캐릭터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입담대결이다. 이 연극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뼛속까지 속물적으로 보여야 한다. 속물근성을 들키지 않으려 위선도 떨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탄로 나는 순간, 한없이 무너져 발가벗겨져야 한다.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네 (명의) 연기 귀신들의 정확한 언어 호흡으로 앙상블을 이룬다.
캐릭터 각각의 입체감도 탁월하다. 피해자의 엄마 페넬로피(조디 포스터)는 인류애를 주창하지만 정작 자기애에 도취돼 이기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그녀의 남편 마이클(존 C.라일리)는 허허실실 사람 좋아 보이지만 중요한 순간 독설을 마다하지 않는다. 가해자의 아버지인 변호사 앨런(크리스토프 왈츠)은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해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고, 고상한 듯 보이던 그의 아내 낸시(케이트 윈즐릿)는 명품 가방 하나에 체면을 구긴다. 위선과 허영, 휴대폰 중독, 대기업 횡포, 가식. 결국 이들 모두가 현대사회를 좀먹는 대학살의 신들인 셈이다.
2012년 8월 14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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