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일본의 행동파 만화가로 유명한 사이바라 리에코의 남편이자 전쟁사진가인 가모시다 유타카의 자전적 소설 <원더링 홈>(Wandering Home)을 원작으로 삼았다. 영화를 보면 사이바라 리에코 원작의 영화 <퍼머넌트 노바라>나 만화 <우리집> 같은 작품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영화는 관조적이고 담담하다. 극복과 화해, 감동의 테마에 안성맞춤인 소재를 대중영화기법과 달리 성장드라마 도식으로 풀었다. 알코올 의존증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남자의 일상을 동정하거나 질타하지 않고 섬세하게 짚어나간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피를 토할 때까지 술을 마시는 난감한 상황마저 일본영화 특유의 소소한 코미디로 유쾌하게 그려낸 것이 묘미다.
특히 폐쇄병동의 드라마는 촘촘하다. <그림 속 나의 마을>의 감독 히가시 요이치는 <피크닉>의 판타지적 공간이나 <콰어어트 룸에서 만나요>의 연극적인 공간과는 다르게 조금은 현실적인 병동의 모습을 담는데 고심했다. 일반 병동보다 암울하고 거친 알코올 의존증 폐쇄병동의 풍경 사이에서 관계를 맺고 속을 터놓는 과정이 은근하게 그려진다. 술이 부재한 사이 매일의 식단이 또 다른 욕망의 상징처럼 등장하는 씬은 그대로 코믹하게 치환된다. 야스유키의 속마음이나 상상을 그대로 영상화시킨 장면들이 코미디를 담당한다면 의사나 환자들과의 관계는 드라마를 맡는다. 카레에 집착하는 다 큰 남자의 모습, 그리고 한 입 베어 무는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 모습까지, 행복이란 이렇게 가까운 곳, 소소한 틈새에 있음을 환기한다. 절망과 행복 사이, 놈팡이와 고독한 남자라는 이 미묘한 중첩의 이미지를 공감가게 연기해낸 건 팔 할이 아사노 타다노부의 몫이다.
고통 속에서도 삶이란 균질하지 않다. 슬프기만(카나시이) 하거나 외롭기만(사비시이) 하지는 않으니까. 아 좋다(아아 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도 슬픔 사이에 엉켜 있다. 희로애락이 불규칙하게 쌓여있는 현실에서도 슬픔과 배고픔이 교차하듯이 말이다. 일본풍 슬로우 코미디나 코믹 가족드라마를 기대해서는 난감할 수도 있다. 오래도록 뭉근하게 끓인 미소시루 같은 영화를 생각하고 가면 알맞다. 은근한 미소와 차츰 젖어드는 슬픔은 덤이다.
2012년 7월 11일 수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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