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의 출발은 김탁환의 소설 ‘노서아 가비’다. 각색을 거치면서 원작의 느낌은 많은 부분 탈색됐다. 김탁환의 소설을 미리 접한 이들에겐 반갑지 않을 일이다.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간극은, 여주인공 따냐 캐릭터다. 소설 속 따냐는 <타짜>의 정마담(김혜수) 뺨치는 희대의 사기꾼이다. 반면 스크린 속 따냐는 역사 현장에 위태롭게 내몰린 비극의 여인에 가깝다. 생각해 보면 이건 어디서 본 듯한 그림이다. 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2007년 개봉한 <황진이>다. <가비>는 장윤현 감독의 5년 전 작품 <황진이>와 닮아있다. ‘16세기에 살았던 21세기의 여인 황진이’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영화가 내놓은 ‘지고지순 순정녀 황진이’는 아쉬운 캐릭터였다. 이 아쉬움이 <가비>로 이어진다.
물론 감독의 재해석이 허락된 세계에서 원작의 흔적만 찾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소설을 지우고 바라보는데, 이 역시 만족스럽진 않다. <가비>에는 사건은 즐비한데, 감정은 안 보인다. 인물들의 심리변화가 충분한 납득을 구하지 못한 채 달리면서 극 몰입도를 현격하게 떨어뜨린다. <가비>가 잘못 사용한 또 하나의 재료는 행동보다 말이 앞선다는 점이다. 예컨대 사다코가 (조국이었던) 조선에 품은 분노, 고종이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겠다며 찾아온) 일리치에게 느낀 감정, 일리치의 고종을 향한 질투. 이 많은 감정들이 씬과 씬의 유기적인 흐름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사 하나로 너무나 쉽게 툭 던져진다. 이 가운데 따냐와 일리치의 애달픈 사랑은 절정에 오르지 못한 채 식어버린다. 따냐-일리치-고종의 삼각관계도 끓는점 아래에서 미지근하게 머문다.
김소연, 주진모, 박희순은 각자에게 할당된 임무를 무리 없이 소화한 느낌이다. 그러나 삐걱거리는 작법 안에서 빛날 기회를 잃었다. 반면 일부 조연들의 국어책 읽는 듯한 연기는 아쉬움이다. 외국 배우들의 연기 또한 지적받아 마땅하다. 그들의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 흉내내기(혹은 재연)에 가깝다. 영화가 흡사 <서프라이즈> 같다는 말들이 나오는 데에는, 이들의 공(?)이 크다. 시대 배경상 외국인들이 많이 등장해야하고, 이를 완벽하게 소화할 배우가 부족한 건 이해하지만 그것이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배우의 연기가 안 된다면, 디렉팅을 더 강하게 몰아쳤어야 하지 않았을까. 어설픈 연기가 낳은 몰입방해의 피해는 관객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지고 말았다.
2012년 3월 15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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