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소설의 그 유명한 대사 ‘지금 이 방안에 범인이 있어’는 스파이 장르에서도 유효하다. 이십 년 지기 친구이자 동료 중 간첩이 있다는 열린 미스터리는 용의자마다 드라마와 플롯을 허용한다. 불신의 프레임으로 들여다보면 모두가 의심스럽기 마련이다.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인간관계는 과연 첩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그 답에 도달하는 과정에 감정을 싣는다. 사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한 명의 범인을 추격하는 할리우드식 도식에 취하면 재미를 잃을 공산이 큰 영화다. ‘누구’보다 ‘왜’라는 명제로 접근해야 하는 함수인 셈이다. 그래서 감독이 삽입한 동성애 코드는 화가의 인장처럼 냉철한 스파이를 인간으로 둔갑시킨다. 고정간첩일수록 생활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임무는 자연스레 인간성을 좀먹기 마련이다. 변절과 충성, 관계가 그려내는 삼각관계에서 감정을 싣고 달리면서 영화는 안정된 구도를 만든다.
첩보물의 오락성을 배제하고 영화가 전면에 세운 세 가지는 걸작으로 불리는 원작의 영상화, 미학적으로 훌륭한 장면 배치,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이다. 70년대 공기를 먼지까지 환기시킨 카메라는 음울하고 아름답다. 감독의 전작 <렛 미 인>의 설원 위에 놓였던 차가운 공기가 70년대 영국에서도 시적인 분위기를 유발한다. 특히 일련의 죽음에 대한 미학적인 씬들은 잔상이 남는다. 좀처럼 조합하기 힘든 쟁쟁한 남자 배우들의 앙상블은 훌륭하다. 콜린 퍼스, 마크 스트롱, 톰 하디, 베네딕트 컴버배치, 존 허트까지 각 세대별 남자배우들이 벌인 합동작전은 성공적이다. 광기의 아이콘이었던 게리 올드만은 절제와 내면연기로 신체를 재조립하고 연기인생로 최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에 이름을 올렸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복잡다단하다. 두더지, 서커스, 컨트롤, 칼라(전설적인 KGB 장교) 등 익숙지 않은 첩보물 용어와 많은 등장인물의 수 덕에 혼란에 빠지기 쉽다. 엘리트 스릴러라는 용어로 수식되고 있는데 관객과 영화가 두뇌게임을 벌이는 류는 아니다. 원작을 읽고 가거나 79년 TV시리즈를 인지하고 간다면 한층 친절한 영화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선험적 원작 읽기가 필수적이지는 않다. <렛 미 인>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기대와 최근 영국드라마 <셜록 홈즈>로 주가를 올린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얼굴을 보겠다는 심산으로 극장에 간다면 좀 더 각오를 해 둘 필요가 있다. 스파이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제공하는 축축하고 음울하며 답답한 특유의 분위기는 유쾌하진 않지만 흥미롭다.
2012년 2월 7일 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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