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149승에 빛나는 국내 최고의 투수 윤도훈(김주혁). 하지만 인간 윤도훈은 국내 최하에 속한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허구한 날 사건 사고를 일으켜 매번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한다. 실추된 이미지처럼 야구 실력도 뚝뚝 떨어진 도훈은 선발에서 패전 처리 전문 투수로, 1군에서 2군으로 전락한다. 예전만큼 도훈에게 대우를 해주지 않는 구단처럼, 아내 유란(김선아)도 마찬가지. 집에서 쫓겨난 그는 후배집에서 얹혀사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유란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는 소식을 들은 도훈은 아내가 췌장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김상진 감독이 새롭게 장착한 휴먼 드라마는 야구라는 소재와 접목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 <투혼>은 매번 위기를 맞이할 수 있는 야구와 인생의 공통점을 드러내면서, 윤도훈이 선수로서 그리고 남편과 가장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본 적이 없는 도훈이 아버지와 남편의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나간다. 감독의 사인을 무시하고 홈런을 친 아들에게 칭찬이 아닌 혼을 내고, 아픈 아내에게 힘을 주기 위해 마운드에 다시 오르는 등 도훈은 철부지 소년에서 어엿한 어른이 되어간다. 감독은 야구 경기 장면과 더불어 철없던 한 남자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쭉 보여준다.
하지만 김상진 감독은 인물들의 세밀한 감정선의 표현에서 약점을 노출한다. 특히 신파를 동력으로 삼아 감정을 매몰차게 고조시키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감정을 과하게 쏟아낸다. 같은 장르의 영화가 만들어놓은 코스에 그대로 감정을 집어넣는 느낌이라 새로움은 덜하다. 이런 단점을 극중 부부로 나오는 김주혁과 김선아의 호연으로 메운다. 이들은 좋은 공을 던지는 투수와 그 공을 제대로 받아내는 포수처럼 절묘한 호흡을 보여준다.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난 사람처럼 행동하다가도 잊고 지냈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는 이들은 부부라는 애증의 관계를 잘 표현한다. 여기에 다수의 영화에서 웃음을 책임졌던 박철민은 2군 감독으로 나와 깨알 같은 코믹 본능을 제대로 보여준다.
<투혼>은 윤도훈과 가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긴박감 넘치는 야구 장면을 기대하고 온 관객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남을 영화다.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 옷을 입고 출연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는 야구팬들에겐 큰 선물이다.(물론 삼성 라이온즈 팬들에겐 싫을 수 있지만) 영화의 재미를 떠나 롯데 자이언츠의 포스트 시즌 성적이 영화의 흥행을 좌우할지도 모른다. 이제 롯데 양승호 감독과 선수들의 투혼이 필요할 때다.
2011년 9월 30일 금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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