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고양이를 부탁해> <가십걸> <섹스 앤 더 시티>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언급하지 않아도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이하 ‘마블미’)에는 기존 성장드라마와 ‘칙릿(chicklit)’이 밟고 간 그림자들이 수두룩하다. <고양이를 부탁해>가 얘기한 20대 여성들의 이야기에, <가십걸>이 지닌 부유한 상류층 라이프스타일을 섞고, <섹스 앤 더 시티>의 배경만 서울로 바꿔 얹은 백화점 같은 작품이란 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소모되지 않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말은 다소 농담처럼 들린다. 레퍼런스가 되는 영화의 장점을 뽑아내겠다는 야심찬 의욕은 보이나, 그 의욕을 뒷받침하기엔 <마블미>는 진중하지도, 독창적이지도, 사려 깊지도 않다. 선배들의 영화를 본인만의 소유격으로 변주했다기보다, 편한 것만 취해서 패러디한 느낌이랄까.
잘못 끼워진 첫 단추의 시작은 ‘88만원 세대의 현실을 솔직하게 담아내겠다’는 설정에서부터다. ‘꿈은 명품, 현실은 아울렛’에 공감하기에 <마블미> 속 그녀들은 이미 가진 게 너무나 많다. 클럽에서 마음껏 춤추고, 마사지샵을 부담 없이 이용하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20대 여성의 보편적인 삶을 발견하기란 무리가 있다. 갈등은 있지만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이 미약한 것도 아쉬움이다. 방송 작가를 꿈꿨던 유민 친구의 죽음을 네 친구 화해의 계기로 설정한 건, 뜬금없는 동시에 일견 불편하다. 최근 있었던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에 문제의식을 던지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한 발 담그기는 가뜩이나 노선이 불분명한 영화에 불을 지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이 영화의 미덕을 찾자면, 20대 여성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만큼은 감각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드는 아쉬움. 차라리 여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영화로 노선을 분명히 했으면 어땠을까. 이젠 “사회지도층~” 운운하는 김주원(현빈)의 솔직한 거만이 사랑받는 시대다. 도도한 척 하는 <가십걸>의 소녀들이 열광 받는 시대고 말이다. 네 여성이 (태생적으로) 가진 것들을 털털하게 인정하고 출발했으면, 최소한 작품이 지닌 생기발랄함만큼은 손실되지 않았을 게다. 세상에 ‘쿨’한 게 어디 있겠냐만, 가끔은 ‘쿨’한 척 하는 것도 필요한 법이니까.
2011년 3월 26일 토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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