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번호 2537번 중국인 애나(탕웨이). 그녀의 죄목은 살인.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7년째 세상과 단절돼 있다. 여자는 그런대로 잘 살고 있다. 아니, 무미건조한 시간을 의욕 없이 버텨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어머니의 부고 소식과 장례식 참석을 위해 주어진 3일간의 휴가는 애나의 멈춰진 시간에 파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시애틀행 버스에서 훈(현빈)을 만나는 순간, 정지해 있던 애나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교포 부인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이 한국인은 애나에게 무얼 바라는 걸까. 왜 그녀 곁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걸까. 사랑은 없다고 믿었던 한 남자와, 사랑은 이제 끝났다고 믿는 한 여자의 하루간의 동행은 안개와 함께 점점 짙어진다.
<만추>는 1966년 이만희 감독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처음은 아니다. 35년의 시간 속에는 또 다른 <만추>들이 세 작품이나 있다. 일본 사이토 코이치 감독의 1972년 <약속>, 김기영 감독의 1975년 <육체의 약속> 김수용 감독의 1981년 <만추>가 모두 이만희 감독에게서 출발한 작품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원본인 이만희 감독의 <만추>만은 확인 할 수 없다. 필름이 유실된 탓이다. 이것이 리메이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김태용 감독에게는 보다 자유로운 해석의 날개를 달아준 듯하다.
김태용 감독은 한국을 벗어나 시애틀이라는 낯선 공간으로 무대를 넓힌다. 그리고 낙엽 대신, 안개를 스크린에 덧칠하며 자신만의 <만추>를 그려낸다. 특히 <가족의 탄생> <시선 1318> ‘달려라 차은’편에서 시도된 바 있는 판타지의 등장은, 이 영화를 원작에서 가장 자유롭게 하는 부분이자, 김태용만의 화법이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훈과 애나가 먼발치에서 다투는 연인의 대화에 자신들의 말을 입히는 장면, 이어지는 두 연인의 춤추는 극중극 판타지는 사건보다 마음의 궤적을 담아내려는 감독의 의중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다.
두 남녀가 소통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김태용 감독의 인물들은 항상 소통에 목말라 했다. 교환일기가 등장했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도, 대안가족이 만들어지는 <가족의 탄생>도, 필리핀 이주 여성이 등장하는 <시선 1318> ‘달려라 차은’도 종국에는 소통에 관한 영화였다. <만추>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영화는 국적이 다른 남녀를 내세움으로서 소통의 다리가 되는, 언어마저도 일부분 거세한다. 그런데 영어, 한국어 , 중국어 세 가지 언어가 뒤섞인 대사는 그들의 소통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가 된다. 중국어로 자신의 과거를 내 뱉는 애나의 고백. 그 뜻도 모르면서 자신이 유일하게 아는 중국어 ‘하오(좋아)’, ‘화이(나쁘다)’로 맞받아치는 훈. 소통의 핵심은 말이 아닌 마음임을. 이 영화는 보고 듣는 영화가 아닌, 느껴야 하는 영화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의 배경인 안개의 도시 시애틀은 단순한 로케이션을 넘어 제3의 캐릭터로 기능한다. 영화 <파주>에서 이미 한차례 안개라는 이미지를 고즈넉하게 형상화 했던 김우형 촬영 감독은, 다시 한 번 안개 속으로 들어가 인물들의 감정을 폭 넓게 길어 올린다. 그리고 탕웨이. <만추>에 쏟아지고 있는 뜨거운 관심의 8할은 현빈이라는 배우 때문이지만, 탕웨이의 연기는 현빈의 8할을 넘어설 정도로 강력하다. 최소한의 표정으로 최대한의 감정을 끌어내는 그녀의 얼굴은 매혹적인 동시에 우아하다. 이 영화에서만큼은, 탕웨이를 대체할 여배우가 없어 보인다.
2011년 2월 15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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