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39초짜리 예고편이 공개되자 은근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진중권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까지 끌어오지 않아도 대놓고 패러디 코미디를 표방한 이 영화에게 꽉 짜인 논리성이나 완성도를 바라진 않는다. 그저 웃겨주면 되는 거다. 영구식 슬랩스틱은 찰리 채플린, 가깝게는 미스터 빈을 연상시킨다. 어쩌면 이 단순한 코미디가 성공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 심리를 종용됐다. 하지만 영화는 예고편의 기대감을 배신한다.
사실 영구라는 이름이 스크린으로 울려 퍼지는 순간 가슴에 이는 뭉클함이라는 게 있다. 안방극장의 영구가 1950년대 뉴욕의 거리를 활보하면서 ‘띠리리리리리’를 연발하는데 그 슬랩스틱이 국제적으로 통한다는 순진한 희망, 이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홍보 수단 중 하나다. 언론의 혹평을 두고 웃자고 만든 영화에 죽자고 달려든다는 옹호론은 <디 워>의 기시감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함량 미달이라면, 더 이상 애국론으로 포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먼지 하나, 세월의 흔적 따위 없는 세트 자체의 키치스러움이나 촌스러운 영화 음악과 같은 부수적인 항목을 꼬집는 것은 무용한 일이다. 문제는 이 영화의 코미디 연출 방식이다. 진공청소기, 야구방망이, 얼음 등 소도구를 이용한 구닥다리 코미디 레퍼토리가 대거 등장하는데, 이 작은 콩트들은 그저 일렬로 나열될 뿐이다. 드라마 사이에 들어가 적시적소에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위해 드라마가 따라 붙는 식이다. 5분 분량의 콩트가 아닌 이상 시츄에이션 코미디만으로 103분 분량의 영화 전체를 감쌀 수는 없다.
미니스커트와 오드리 헵번의 업스타일, 빅 맥의 탄생을 영구 덕분이라고 우기는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다름없는 설정들은 어디까지나 이야기적 재미를 시도한다는 차원에서 넘어가겠다. 하지만 미국 관객을 다분히 의식하고 마련한 이 몇 가지 설정마저 코미디로는 불발한다. 러닝타임 내내 상황극으로 웃음을 유발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밑천이 떨어진다. 패러디 면에서나 영구 캐릭터의 안착에서나 모두 성공하지 못한 <라스트 갓파더>가 이뤄낸 건 야심찬 캐스팅이다. <비열한 거리>와 <델마와 루이스> <내셔널 트레저>를 넘나드는 배우 하비 케이틀과 마찬가지로 <밀러스 크로싱>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부터 <스튜어트 리틀>까지 다양한 영화를 거쳐온 존 폴리토, 두 대부들의 캐스팅은 영화를 ‘서프라이즈’ 재연 드라마라는 오명에서 구원한다.
현재 온라인은 <디 워> 때와 유사한 상황이다. 가족끼리 편하게 보는 코미디에 비평의 잣대를 갖다 대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는 막무가내식 옹호론은 영화의 기본적인 만듦새 앞에서는 접어줘야 할 것 같다. 120억의 예산을 1990년대 홈 비디오 수준에도 못 미치는 영화에 조달했다는 것 자체가 영화적인 손실이 아닐까. 영화에 대한 순수한 애정으로 접근하거나 뉴욕의 영구를 보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환기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애국심과 추억을 노골적으로 동원해 영화를 옹호하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심형래의 <대부> 패러디 영구 영화에 예술성을 기대한 것이 아니다. 결과는 재미가 결여된 영화를 감독 자신의 네임 밸류와 자본으로 밀어붙이는 형국으로 남는다.
<라스트 갓파더>는 감독을 염원하는 한 사람의 꿈의 집약체다. 포스터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엔딩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인용하는 용감함은 노골적인 헌사를 넘어선다. ‘한국 슬랩스틱계의 대부’와 ‘나라망신’이 동시에 영화 태그로 등장하는 이 영화의 흥행력은 2010년 현재 관객을 말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 같다. 참고로 <디 워>는 2007년 한국영화 최다 관객을 동원했다.
2010년 12월 30일 목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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