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작가이자 사회비평가, 미술평론가인 존 버거는 자신의 저서 ‘수퇘지 땅’에 다음과 같이 썼다. “그들은 도시 사람들처럼 고소를 하지 않는다. 이는 그들이 ‘단순’하거나 훨씬 진실하거나 덜 교활해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것과 그 사람에 대해 세상이 다 아는 것 사이의 간격이-이것은 모든 표현의 간격이기도 하다-극히 좁은 탓이다.” 다분히 어렵게 꼬인 듯한 이 말을 풀이해보면, 결국 ‘입장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다. 개인의 입장과 사회적 입장이 얼마나 일치하느냐 하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은 이런 ‘입장’에 관한 이야기다. 여자아이가 없어지고, 딸이 실종되어 눈이 뒤집힌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웃에 사는 아동성범죄 전과자를 의심한다. 아이들을 가진 다른 부모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죄인처럼 숨죽여 지내는 전과자의 가족이라는 입장도 있다. 그러니 사회는 ‘법과 원칙’에 따라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소하게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개인의 입장이 사사건건 얽히고 충돌하는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담당형사인 백 반장(정인기)이다. 그는 사회정의를 수호하는 경찰이기 이전에 충식의 친근한 이웃이고, 딸을 가진 아버지의 입장이다. “수사에는 원칙과 절차라는 게 있다”는 그 자신의 말은 이런 개인적인 입장 앞에서 무력화된다.
영화의 기본적인 줄기는 충식과 세진의 입장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들 외에도 작은 마을 안에서 혼재해 있는 이런 ‘입장’들을 최대한 다양하고 수평적으로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영화 내내 껄렁거리는 조연이었던 문 형사(배호근)가 던지는 대사는 핵심을 찌른다. “반장님, 범인을 잡고 싶은 게 아니고 그냥 그 새끼(세진)가 싫은 거 아닙니까?” 그 입장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때, 세진을 향한 사람들의 증오가 언뜻 불합리한 편견의 폭력으로 보이지만 누구를 동정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게 만든다. 그 자체가 관객들에게 던져지는 불편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당신이라면 저런 입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사실 영화가 던지는 주제에 비해 미학적 완성도는 다소 부족하다. 편집은 단편적이고, 지나치게 빠른 전개와 통속적인 표현방식이 감정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틀림없다. 박수영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에서 “요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만들었다”고 말한 것처럼, 적어도 만든 이의 진심은 곧이곧대로 감지되는 영화다.
2010년 11월 3일 수요일 | 글_최승우 월간 PAPER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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