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염두에 두고 봤을 때, <부당거래>는 류승완의 경쟁력이라 불린 그만의 취향이 가장 많이 거세된 영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류승완은 자신의 경쟁력을 낮추는 순간, 본인의 작품 중 가장 경쟁력 있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결코 그가 이제껏 고집해 온 취향이 나빴다는 의미가 아니다. 보편적인 취향보다 독특한 표현력을 무기로 전진해 온 감독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감독이 마니아 팬들에게 지지를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 받는 것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류승완의 행보는 전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부당거래>를 통해 그는 후자의 길에도 발을 들여놓지 않을까 싶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후 10년. 10년 전 돌풍을 일으키며 등장했던 류승완에게 <부당거래>는 새로운 길로 향하는 또 한 번의 터닝 포인트다.
<부당거래>가 그리는 세계는 흡사 적자생존 법칙이 지배하는 동물의 왕국 같다. 하지만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동물세계의 먹이사슬과 달리, <부당거래>의 먹이사슬은 인간사의 균형을 이간질한다는 점에서 더 비정하고, 불편하고, 삭막하다. 영화에는 9시 뉴스 단골 소재인 아동 성폭행, 살인, 대형 건물 입찰 비리, 부패 경찰, 뇌물수수 등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실제 영화 밖 세상에서 일어난 일부 검사들의 스폰서 논란과 김길태 사건들이 맞물리며, <부당거래>를 스크린 안팎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하게 했다. 영화가 관객의 폐부를 예상보다 깊이 파고든다면, 영화가 보여주는 (영화 같지 않은)대한민국 살풍경 때문이다.
기가 찬 건, 그 속에서 관객들이 정을 줄만한 인물이 눈씻고 찾아도 없다는 점이다. 승진에 대한 욕심으로 사건을 조작하고 가짜 범인을 만드는 경찰 최철기(황정민)나, 목적을 위해 살인도 불사르는 최철기의 스폰서 장석구(유해진)나, 뇌물수수가 밝혀질까 종국엔 최철기와 손을 잡는 검사 주양(류승범)이나 하나같이 나쁘거나, 비열하거나 그도 아니면 정신이 나갔다. 한 배를 탔지만 목적하는 바가 너무나 다른 이들의 거래에, 믿음이나 교감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이 거래에는 그 흔한 계약서도, 차용증서도, 증인도 없다. 룰을 깬다고 해서 책임을 물을 사람도 없고, 사나이 체면 구길 걱정도 없다. 내가 당하기 전에 뒤통수 때리면 그만이고, 발각된다고 해도 시치미 뚝 때면 만사 오케이다. 상대를 밟고 올라서는 것, 동물의 왕국에서 통용되는 암묵적인 법칙이다.
류승완 감독은 ‘피도 눈물도 없는’ 이 비열한 세계를 감상주의나 냉소주의 어느 한쪽에 크게 치우치지 않고 달린다. 장르영화 주인공들에게 입히는 그 흔한 영웅주의도 없고, 그들의 관계를 신파나 연민으로 도배하지도 않는다. 한없이 무거워 질 수 있는 분위기를 이완시키는 시의 적절한 유머도 일품이거니와, 유려한 카메라 워크, 소름 돋는 예상 밖의 반전도 훌륭하다. 경찰대 출신과 비경찰대 출신들이 반목하는 경찰서 씬과 사실적인 업계 용어 등에서는 직접 발로 뛰어 채집한 디테일함이 물신 풍기기도 한다.
<부당거래>는 배우들의 연기에도 크게 빚지고 있다. 주연은 물론, 조연과 단역 심지어 말 한마디 없는 카메오 안길강(류승완 사단의 대표적인 배우다)마저도 제 몫을 다 해 낸다. 특히 올해 <용서는 없다>에서 용서할 수 없는 연기를 선보이고, <방자전>에서는 송새벽의 존재감에 밀렸던 류승범은 이번 영화로 부진을 완벽하게 털어낸다. 이 영화에는 주목해야 할 또 한명의 인물은 시나리오 작가 박훈정이다. 연출과 배우들이 마음 편히 밥숟가락 얹을 수 있도록 근사한 밥상을 차려준 건, 박훈정 작가다.(실제 영화 속에는 황정민의 밥상 소감 패러디 대사가 등장한다.) <악마를 보았다>의 각본가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던 그는 <혈투>를 통해 감독 데뷔를 앞두고 있는데, <부당거래>가 공개되면, <혈투>에 대한 관객 기대치도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2010년 10월 25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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