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종종 말한다. 다 잡은 물고기에게 먹이 주는 거 봤어? 물으나마나 물고기는 여자. 그 물고기를 건지려고 ‘정성’이라는 미끼를 던지는 낚시꾼은 남자다. 아, 정정하자. 잡기 전의 물고기는 여자가 확실하지만, 잡은 후의 물고기는 가끔 여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심드렁한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랑 앞에 변덕스러운 남성들의 연애심리를 통해 사랑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은 인간의 본능임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성지혜 감독은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생성되고 변화, 소멸하는지를 주인공 종훈(김영호)을 통해 추적한다.
종훈은 자칭 타칭 지식인이라 자부하는 갤러리 큐레이터다. 그림 하나에도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재능을 지닌 이 남자는 유명 화가 출신인 전 화백(명계남)의 전시를 위해 부산에 갔다가 오래전 알고 지내던 은주(윤주희)를 만난다. 새하얀 간호사복을 입고 반겨 주는 그녀는 종훈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물고기다. 소유욕이 불탄다. 새로운 게 탐난다. 공략해서 덥썩 문다. 이내 오랫동안 곁에 있던 물고기인 여자 친구 선영(황인영)은 버려진다. 그렇게 종훈은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장거리 여행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내 것이 아닐 때는 그토록 곁에 두고 싶던 은주에 대한 감정이 서서히 식어간다. 내 손에 없는 물고기가 더 맛있어 보인다.
종훈은 영화 곳곳에서 홍상수의 남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속물적인 유전자를 여러 번 드러낸다. 자기가 차버린 전 여자 친구를 찾아가 진상 아닌 진상을 떨기도 하고, 여자 앞에 잘난 척 하다가 이내 유치한 질투심을 들키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유전자가 일상에 숨겨진 절묘한 페이소스까지 전하지는 못한다. 단지 웃길 뿐이다. 홍상수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키득거림과는 명확히 다른, 단선적인 웃음에 그친다는 얘기다. 이는 인물들의 감정을 충분히 쌓아올리지 못한 탓이 크다. 특히 주인공을 둘러싼 여자들의 감정선을 빈약하게 내버려 둔 건, 패착이다. 입체감이 명확하게 살지 못한 여성 캐릭터들은 종훈의 캐릭터마저 희미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주목해야 한다면, 몇몇 부분에서 발견되는 통통 튀는 설정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홍상수스럽지 않은 부분들에서 발견된다. 예컨대, 섬나라 피지로 떠난 주인공 남녀의 신혼 여행기를 ‘동물의 왕국’ 형식(실제 동물의 왕국 성우가 내레이션을 맡았다.)으로 담아낸 씬이 그렇다. 두 남녀의 균열을 ‘동물의 왕국’ 속 야생 동물에 빗대 독창적으로 풀어낸 건, ‘여자 홍상수’가 아닌 ‘ 성지혜’ 만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이러한 그만의 독창성이 조금 더 발휘됐으면 어땠을까.
2010년 9월 24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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