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이 땅에 첫 발을 디디면서 만들어낸 괴물 ‘용패’는 당시 한국 관객의 정서로는 감당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자살한 사람의 시신을 은닉하고 유가족의 돈을 갈취하면서 살아가는 용패의 행동은 생경했고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겨우 목숨을 부지한 여성을 성욕의 도구로 삼은 부랑자의 폭력을 이해해줄 관객은 없어 보였으니, 평단은 날을 세워 그의 영화를 공격하는데 진력을 다했다. 그 시절 어떤 이들에게 김기덕의 영화는 ‘죽여도 무방한 죄인’에 다름 아니었다. 그것도 무려 10년 동안이나. 김기덕의 영화가 매체와 평단의 혹독한 비난을 받은 과정을 돌이켜보면 한국사회가 윤리적 문제를 현실 안으로 수용하는 방식과도 일치했다. 한마디로 ‘내가 경험하지 않았기에 인정할 수 없고, 네가 경험하지 않고서는 만들 수 없었을 테니 쓰레기’라는 것.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김기덕은 영화연출에서 손을 놓은 지 꽤 되었다. 대신 그의 영향을 받은 후예들이 청출어람하고 있다. 바야흐로 ‘김기덕의 아이들’이 한국영화계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김기덕의 영화라고 불려야 옳았던 <영화는 영화다>에서 장훈 감독은 스승이 데뷔작에서 받은 수모를 되갚아주기라도 하듯,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깡패와 깡패 같은 영화배우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려냈는데, 두 인물이 품은 메타포와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 아직도 통쾌할 정도다. 그는 <사마리아>를 비롯한 김기덕의 영화 몇 편을 거친 대표적 김기덕 문하생이다. 또 <피터팬의 공식>과 <폭풍 전야>의 조창호 감독과 올 3월 홍콩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불러 모았던 <엄마는 창녀다>의 이상우 감독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김기덕표 괴물이 등장했으니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장철수 감독이 주인공이다. 일본 유학도중 김기덕의 <섬>을 보고 무작정 찾아가 연출부에 입문한 장철수 감독은 2006년, ‘사랑하고 헤어지는 모든 연인들의 속사정에 관한 살벌하지만 유쾌한 보고서’ <천국의 에스컬레이터>를 만들게 된다. 내가 기억하기로 이 영화는 안정감 있는 다양한 색채변화가 인상적인 작품으로, 황당하면서도 충분히 공감할 만 한 동시대의 사랑에 대한 ‘죽이는’ 이야기였다. 때문인지 장철수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도, 단편이 보여준 B급 감성과 남다른 색채감을 앞세우면서 원시적 폐쇄공간이 불러오는 긴장과 공포를 빼어나게 그려내고 있다.
김기덕의 <악어>가 뭍으로 나온 지 15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한강을 근거지로 시신을 수거하며 살아가는 사내를 만난 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의 후예 김복남은 낫 하나만으로 온 섬을 슬래셔무비 세트장으로 바꿔놓았으니 말이다. 김기덕의 학대받던 여성이 장철수의 손을 거쳐 복수의 주체가 될 때, 그녀의 낫질이 섬의 야만을 평정하고 정의를 세울 때, 금수만도 못한 남성의 목을 슬근슬근 썰어 몸통과 분리시킬 때, 마침내 서툰 도시여자로 분장하여 뭍에 상륙할 때, 온통 불친절한 사람들을 퇴장시키고 드디어 “친절한 사람도 다 있”음을 몸으로 확인할 때, 그 순간 나는 목구멍을 밀고 올라오는 환호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문하생들과 마찬가지로 장철수의 영화에도 김기덕 특유의 비릿하고 저릿한 냄새는 어김없다. 특히 장철수는 ‘나쁜 캐릭터들’에게 조차도 ‘투박한 친절’ 같은 선의의 요소를 슬며시 끼워 넣었다는 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미 모두 공범관계라고 생각한다”던) 김기덕식 세계관의 충실한 이행자로 보이기까지 한다. 반면 지나치게 영리한 구석도 발견된다. 즉 스승의 첫 영화가 세상을 향해 내지른 겁 없는 영화청년의 일갈이었다면, 장훈과 장철수와 조창호의 영화에서는 치밀한 계산이 눈에 띈다는 말이다.
서른 살이 되어서야 생애 최초의 영화를 보게 된 김기덕이었다. 그는 시네필도 영화학도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학력에 노동자생활을 전전하다 떠난 파리에서 <양들의 침묵>과 <퐁네프의 연인들>에 이어 <연인>까지 보고나서는, 어떡해서든 영화를 하기로 결심한 예측불허의 남자였다. 현장 경험도 영화공부도 해본 적 없는 그가 초반에 찍은 필름을 다 버린 끝에 4개월 동안 찍은 영화가 데뷔작 <악어>이다. 그런 스승과 비교하면 2000년대 후반에 데뷔한 후예들은 배움도 풍부하고 영화현장 경험도 쌓았으며 무엇보다 웬만한 잔혹한 장면도 웃으면서 견뎌낼 수 있는 관객과 만났다는 점에서 행복하다 하겠다.
<악어>때부터 김기덕의 영화를 지지해온 나로서는 <빈집>과 <사마리아>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을 때보다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호평과 약진이 더 반갑다. 이제야 말로 김기덕의 영화가 한국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장훈은 두 편의 영화로 충무로의 흥행사로 점지되었고, 장철수는 나홍진과 조성희와 더불어 한국영화계에서 긴장과 공포의 쉼 없는 레이스를 펼칠 기대주로 각광받고 있다. 나머지 다른 감독들도 지켜볼 만하다. 이들의 시작은 분명 스승보다 화려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데뷔 10년 후, 스승이 드디어 평단과 관객의 마음을 얻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면서 국제영화계의 총아가 된 것처럼 제자들의 미래 또한 그러할 것이란 기대를 가져본다. 밝은 눈을 가지고 지켜 볼 터이니 부디 지금처럼만 해주시라.
2010년 9월 9일 목요일 |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