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 출신의 군인 퀸투스(마이클 패스벤더)는 누구에게도 정복당해본 적이 없는 픽트족에게 끌려가 고문을 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도망친 퀀투스는 로마 최고의 전투부대 제9군단을 만나 위기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안도하기도 잠시. 픽트족의 공격을 받은 제9군단은 전투에서 패하고, 부대를 이끌던 장군 비릴루스가 픽트족의 인질로 생포되고 만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7명의 전사들은 퀀투스와 함께 장군을 구하기 위해 픽트족 내부로 침투한다. 그러나 구출은 실패로 돌아가고, 그들은 픽트족의 사냥꾼 에테인(올가 쿠릴렌코)의 맹렬한 추격을 받게 된다.
닐 마샬은 이 영화가 로마판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의 말은, 전투에서 살아남은 로마 병사들이 장군을 구하기 위해 떠나는 초반 30분까지는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장군 구출 계획이 (어이없는 이유로)실패하면서 영화는 ‘구출기’에서 ‘도망기’로 급선회한다. 감독의 의도가 일찍이 바닥난 <센츄리온>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 시점부터다. 고대했던 전투 씬에 대한 기대가 쫓고 쫓기는 지루한 추격전 앞에서 반 토막 난다. 그나마 극을 지탱하던, 엄습해 오는 죽음에 대한 긴장감도 갑작스럽게 끼어든 멜로라인 앞에서 시들해진다. 더 큰 문제는 인물들의 감정 선이 너무나도 얄팍하게 그려졌다는 점이다. 그네들의 내면이 충분한 공감을 사지 못하면서, 이야기는 개연성과 작별을 고한다. 맥 빠지는 일이다.
당초 기대를 모았던, 아날로그 정신 물씬 풍기는 실감나는 액션 씬이 없는 건 아니다. 댕강 잘려나가는 사지, 쪼개지는 머리통, 눈에 박히는 칼 등 잔혹하지만 실감나는 신체훼손 장면도 여럿 보인다. 하지만 개성이 없다. 개성이 없으니 매력이 없고, 매력이 없으니 쾌감도 뚝 떨어진다. 고어 효과가 반감 되는 이유 중에는, 최근 나온 <악마를 보았다> <아저씨>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등의 영화들로 충격이 무뎌진 탓도 있다. 이제 웬만한 수위 가지고는 잔인하다고 명함 돌릴 수 없는 게, 영화 시장(특히 근래 한국시장)이다.(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세상이 험악하다 보니, 그렇게 됐나.) 결국, ‘신화도 기억하지 못한 로마시대’를 반추하고자 했던 <센츄리온>은 스스로도 조만간 관객의 기억에서 사라질 위기에 빠진 듯 보인다. 아, 이토록 허술한 자가당착이라니.
2010년 8월 25일 수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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