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꼭 성공해야지”라는 부푼 꿈만 가진 채, 편의점 알바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카이지(후지와라 타츠야). 어느날 빌려준 돈이라면 어떻게든 받아내는 사채업자 엔도 린코(아마미 유키)가 그를 찾아와 돈을 갚으라고 협박한다. 그녀에게 사채를 쓰고 종적을 감춰버린 친구의 보증을 선 카이지는 원금에 이자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월세도 제때 못내는 카이지에게 그런 큰 돈이 있을리 만무. 이 때 엔도 린코는 카이지에게 프랑스어로 희망이라는 뜻을 가진 에스포왈호에 탑승하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카이지는 항구에 도착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배에 올라탄다. 하지만 희망은 쉽게 오지 않는 법. 게임을 주최하는 테이아이 그룹의 토네가와(카가와 테루유키)는 게임에서 이기지 못하면 지하땅굴에서 평생 강제 노역을 해야 한다는 말을 남긴채 유유히 사라지고, 곧바로 그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죽음의 가위 바위 보 게임이 시작된다.
<카이지>는 1996년부터 지금까지 연재되고 있는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도박묵시록 카이지’가 원작인 영화다. 지금까지 총 판매량이 1,300만부를 돌파한 원작은 2007년에 TV 애니메이션까지 만들어지며 일본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는 원작에 나왔던 3가지의 게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초반에 등장하는 가위 바위 보 게임, 중반부에 나오는 고층빌딩 철골 건너기 게임, 마지막으로 E카드 게임이 대미를 장식한다. 특히 황제, 시민, 노예의 3종류의 카드를 사용해 승패를 가리는 E카드 게임은 카이지와 토네가와의 고난이도 두뇌게임을 펼치게 만들며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단순히 긴박감 넘치는 게임으로 2시간의 러닝타임을 채우기는 역부족. 영화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청년실업을 바탕으로 변변한 꿈도 없고, 꿈이 있어도 이루려는 노력조차 안하는 20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당연히 어느 정도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이야기를 집중시키는 요소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나약한 모습을 대변하는 주인공 카이지다. 카이지도 사회의 경쟁구도에서 튕겨져 나간 패배자인 동시에 꿈을 위해 정진하기는커녕 매번 일확천금의 행운이나 바라고 있는 한심한 청년이다. 그러나 가진 것 하나 없이 목숨을 담보로 치르는 죽음의 게임을 통해 카이지는 한 단계 성장한다. 그리고 카이지의 다이내믹한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이들은 또 다른 인생 역전의 갈증을 해소한다.
하지만 영화는 너무나 설명적이다. 여타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영화의 문제점인 각색에 문제점을 드러낸다.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된 부분도 있지만, 원작을 사랑하는 팬들을 너무나 의식한 나머지 리메이크의 특색을 살리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감독은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연출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대신 영화가 갖고 있는 색깔을 드러내지 못한다. 영화는 인상적인 이미지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까지 일일이 인물의 내레이션을 넣으며 설명하는데, 마지막 E카드 승부 때 카이지와 토네가와의 수 싸움 장면도 그런 식이다. 그런 이유로 러닝타임은 길어지고, 극의 긴장감은 현저히 떨어진다. 또한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대사톤은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기만 한다. 영화는 좋은 패를 갖고 있어도 결국 이기지 못하는 게임처럼, 아쉬움만 남긴다.
2010년 8월 16일 월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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