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경호요원 수현(이병헌)은 약혼녀가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당하자 범인을 찾아내 똑같은 고통을 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강력계 형사 출신인 장인의 도움을 받아 용의자를 압축한 후 장경철(최민식)이 진범임을 알아낸다. 경철에게 무차별 린치를 가한 후 위치추적 장치를 먹이는 수현. 수현은 계속 경철의 뒤를 쫓으며 손목을 부러뜨리고, 아킬레스건을 도려내는 등 죽지 않을 정도의 고통을 가하며 잡았다 놓아주기를 반복한다. 경철은 이것을 하나의 게임이라고 인식하고 수현의 복수에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줄 계획을 세운다.
<악마를 보았다>는 연쇄살인마에게 약혼녀를 잃은 한 남자의 분노에 찬 복수를 다루고 있다. “놈에게 똑같은 고통을 맛보게 해주겠다”는 다짐으로 시작된 끝을 알 수 없는 복수는 조금씩 그 강도를 높여간다. 쉽게 죽일 수도 있지만, 수현은 이 악마 같은 놈에게 한 방의 죽음보다는 긴 고통을 안겨준다. 그러면서 평범했던 수현 역시 서서히 악마가 되어 간다. 복수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참혹한 대결은 결국 두 사람 모두의 악마적인 본성을 깨우고, 일말의 연민도 없이 자행되는 극한의 행동들은 가족과 연결되어 고통의 끝을 경험하게 한다. 영화의 핵심적인 지점은, 단연 악마를 보는 과정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악마가 되어 가는, 상대보다 더 잔혹한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과 분노, 그로 인한 복수로 외피를 둘렀지만, 그 안에는 점차 잔혹한 악마로 변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이 담겨있다.
영화는 보통의 스릴러 영화들이 취하고 있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치중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두 인물의 대치를 통해 긴장감을 증폭시키는데 여기에는 최민식과 이병헌의 힘이 컸다. 우선 5년 만에 돌아온 최민식은 악마 그 자체를 보여준다. 두려움도 공포도 없는 경철은 오로지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악행을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인물이다. 이에 반해 이병헌이 연기한 수현은 차분하고 냉정한 잔혹성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분노로 바뀌고 이 분노는 결국 경철보다 더한 악마성으로 표출된다. 특히 복수라는 일관된 감정 속에서도 절제와 극단을 오가는 감정조절이 눈에 띄는 부분이다.
두 배우의 팽팽함에 김지운의 연출이 불을 지핀다. 거대한 세트를 활용해 공간 자체에 공포를 불어넣는 것은 물론이고, 택시 안이나 펜션에서의 액션에서는 매우 인상적인 카메라워크도 보여준다. 또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유머를 통해 상대적으로 잔혹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모그가 담당한 음악이다. <악마를 보았다>에서의 음악은 고전적인 방식으로 장면과 함께 움직인다. 단순히 분위기를 도와주는 역할이 아니라 장면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여기에 ‘끼익’하고 열리는 문소리나 윗층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등 효과음 역시 몰입도와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 올린다.
<악마를 보았다>가 잔혹극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영화가 놓지 않고 있는 인물들의 감정 때문이다. 비록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분노에서 시작된 복수라는 전제가 깔려있기는 하지만 과연 이 복수에 대한 정당성과 응당한 고통의 대가를 주기 위해 자행되는 끔찍한 일련의 행동들이 도덕적으로 합당한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 꼬리를 문다. 게다가 그들이 선택한 방법이 각자에게 행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현실적이다. 여기서 <아저씨>와의 차별점이 생긴다. 단지 악을 벌하는 차원이 아니라, 피해자가 당했을 고통과 상처를 보다 직접적이고 사실적으로 일깨우고 있다.
<악마를 보았다>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영화다. 사람에 따라서는 높은 수위의 잔혹함이나 그를 연상시키는 장면들, 현실적인 위협이라는 점에서 오는 거부감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영화적으로 구성된 상황이나 설정의 디테일에도 미비한 약점이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인간의 본능에 복수라는 점화제로 감정을 폭발시켜 잔혹함의 끝을 보여준다. 영화의 완성도에는 여러 요소가 영향을 주지만, <악마를 보았다>는 끝장을 확인하는 처절함과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악함의 극단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2010년 8월 13일 금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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