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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훈 감독의 한양대학교 졸업 작품인 <첫사랑 열전>은 첫사랑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영화다. 영화를 접하기 전, 먼저 전해들은 이야기는 저예산 독립영화로서 이 영화가 처한 열악한 현실이었다. ‘제작비가 없어서 기획부터 완성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 ‘넉넉지 않은 제작비를 위해 배우와 스태프들이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 ‘열악한 배급 상황으로 인해 감독과 스태프들이 발품 팔아가며 홍보를 벌이고 있다’ 등이 그것이다. 상업영화 판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눈물겨운 동지애와 순수한 열정에 일단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첫사랑 열전>은 그들의 순수한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힘을 보태주기에 작품이 안고 있는 깊이와 연출의 내공이 한없이 부족하다.
첫 번째 이야기 <종이학>은 사채업자 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사는 혁수(김성곤)가 소녀가장 서연(이청아)을 짝사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슬픈 멜로다. 빚에 시달리는 서연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혁수의 ‘바보 같은 사랑’이 주된 테마다. <늑대의 유혹>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 2>의 이청아가 학교 선배인 감독과의 인연으로 서연으로 출연했다. 이 에피소드의 단점은 명백하다. 진부하고, 진부하고 또 진부하다는 것. 영화는 1970-80년대 방화에나 나올법한 온갖 클리셰들을 나열할 뿐, 자기만의 새로운 옷을 입겠다는 의지를 내보이지 않는다. 창작 정신의 부재는 결국 <종이학>을 삼류 신파물로 보이게 한다.
두 번째 이야기 <한번만 다음에>는 스킨십에 대한 생각 차이로 헤어진 두 남녀가 1년 만에 재회하고, 이를 통해 과거의 숨겨진 비밀을 추적하는 코미디다. 여자가 스킨십을 거부한 이유로 ‘성전환자’라는 놀라운(?) 사실을 설정해 웃음을 노린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는 아이디어와 상황 나열만 있을 뿐, 그것이 첫사랑에 대한 복잡 미묘한 감정을 구축하는 것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게다가 이러한 소재는 이나영의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등이 이미 풀어냈으니, 엄밀히 말해 아이디어가 주는 신선함도 크지 못한 게 사실이다.
마지막 <설렘>은 죽은 남편의 유골함을 들고, 그가 평소 가고 싶어 했던 민박집에 들린 혜정(정애연)과 첫사랑을 잊지 못해 역시 같은 민박집에 온 수희(이가영)의 만남을 그린 작품이다. 예상했겠지만, 혜정의 죽은 남편이 수희의 첫 사랑이었다는 다소 빤한 전개가 이어진다. 절제된 카메라 워크와 배우들의 연기는 세 가지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돋보인다. 하지만 지나친 우연성 남발과 안일한 끝마무리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마냥 희미한 주제를 남기고 만다.
이렇듯 영화는 전체적인 만듦새에서도 부분적인 테크닉에서도 딱히 성과 높은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한다. 충분하지 못한 제작비를 탓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이미 그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좋은 영화를 들고 나온 <낮술>과 <똥파리>를 경험했다. 열악한 상황이라는 게, <첫사랑 열전>의 면죄부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이유다. <첫사랑 열전>의 패착은 명백하다. 진부한 소재와 그 진부한 소재를 안일한 방식으로 풀어낸 연출이 그것이다.
한때 <워낭소리> <낮술> <똥파리>로 인해 독립영화가 붐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잠자고 있던 독립 영화들이 나왔다. 불과 1~2년 전 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독립영화의 열기가 한 풀 꺾였다며 아쉬운 소리들을 한다. 그러면서 독립영화의 야박한 현 시스템을 원망한다. 하지만 시스템을 탓하는 만큼, 독립 영화가 꾸준히 질적 성장을 보여줬는가에 대해 고민과 반성이 충분했는지도 의문이다. 많은 이들의 열정이 모인 <첫사랑 열전>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내심 미안하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영화에게는 백 마디 격려의 말 못지않게, 따뜻한 충고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뜻한 격려라면, 이미 많이 이들이 했을 테니 말이다.
2010년 5월 3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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