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평론가 성희(지진희)는 라디오 생방송 도중, “아내에게 이혼하자고 말할 계획”을 공개하는 철없는 남자. 그게 폼 나는 이혼 발표라고 생각하는 성희는 그러나 자신보다 한발 앞서 이별 편지를 남기고 떠난 아내, 영심에게 배신감을 느낀다.(이런 걸 두고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한다지, 아마.) 아내가 자신의 뒤통수를 쳤다고 생각하는 성희는 결국 아내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하고 친한 후배 동민(양익준)에게 SOS를 친다. 그런데 이게 또 재미있는 게, 동민은 아내의 전 남자친구다. 집 나간 아내를 찾기 위해 집을 나온 남편과, 그녀의 전 남자친구라. 이게 웬 황당무계한 시추에이션!
일단 출발은 좋다. 기본 이상은 하는 흥미로운 설정을 안고 달리는 <집 나온 남자들>은 그 설정에 덧대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캐릭터로 재기발랄함에서 동력을 더한다. 영심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한 때 의지했다는 술집 점쟁이가 엮이고, 그녀의 친한 친구였다는 다단계 판매원이 꼬이더니, 급기야 ‘듣도 보도 못한’ 그녀의 제비족 오빠(이문식)가 엉킨다. 이처럼 영화는 교집합이라고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영심의 과거를 미스터리로 몰고 간다. 양파 껍질 벗듯 드러나는 영심의 과거와 마주해야 하는 주인공들의 심란한 마음을 관객들에게로 합승시키는 감정의 연출력도 나쁘지 않다. 특히 쫀득쫀득한 말장난들과 “여기가 네이버 카페인 줄 아냐? 마음대로 가입하고 탈퇴하게?” 식의 대사가 재치있고,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사실감 넘치는 연기도 상당히 생동감 넘친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 주행에서 스스로 비포장도로로 선회하고 만다. 후반부까지 이 영화가 지닌 매력 중 하나는 영심의 정체가 갖는 묘한 기대감이었다. 즉 영화는 사건의 중심에 있는 영심을 편지 음성을 통해,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또 몇몇의 실루엣으로 짧게 등장시킬 뿐 얼굴은 비공개로 둔다. 성희가 오랜 여행 끝에 영심과 재회했을 때 역시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을 제외한 몸만을 담아냄으로서 그녀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때문에 관객은 자연스럽게 영심의 정체와 더 나아가 영심 역을 맡은 배우의 얼굴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김규리(개명하기 전 김민선)임이 밝혀지는 순간 돌아오는 건 허탈감이다.(홍보가 되고 있음으로 스포일러는 아니다.) 영화는 그녀를 파스텔 톤의 화면과 감성적인 음악으로 마치 화보의 한 장면에 나오는 인물처럼 잡아내는데, 이러한 선택이 현실에 착지하며 내달리던 영화의 느낌을 순식간에 판타지 무비로 둔갑시켜 버리고 만다. <집 나온 남자들>의 최대 장점인 질펀하고 음탕한 코믹함들이 멜로드라마에서 튀어 나온 듯한 김규리의 캐릭터로 인해 상쇄 돼 버리는 것이다.
‘가지 않았어도 될 길’로 갔던 영화는 마지막 순간, 다행히 제자리로 돌아오기는 한다. 감독은 마지막 순간에 술에 취한 세 남자가 영심에게 독백하는 장면을 캠코더에 담아내는데, 인공미를 최대한 배제한 이 장면이 뜻밖의 가슴 찡한 울림을 안긴다.(실제로 이 장면에서 배우들은 취중상태에서 연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 번 탈선했던 영화의 전과 기록이 지워지는 건 아니다. 앞선 특별 출연 캐스팅의 선택이 더 아쉬운 이유다.
2010년 4월 2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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