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코(히로스케 료코)는 맞선으로 만난 겐이치(니시지마 히데토시)에게 단번에 호감을 느끼고 결혼을 한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은 업무 인수를 위해 이전 근무지인 가나자와로 일주일간 출장을 떠난다. 하지만 일주일 후에 보자던 남편은 일주일이 지난 후에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나자와로 온 데이코. 그곳에서 남편의 직장 동료와 거래처 사장 부인인 사치코(나카타니 미키)의 도움을 받아 남편의 행적을 쫓지만, 관련자들이 사망하는 등의 미스터리한 사건만 벌어진다. 붉은 코트의 여자가 남편과 관련된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 이전의 남편에 대해, 일주일간의 행방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는 데이코는 감춰진 진실에 다가간다.
<제로 포커스>는 한 남자의 의문의 살인을 추격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맞선으로 만난 남자와 결혼한 아내는, 사실 남편의 총각 시절이나 그의 지방 출장 생활, 관련된 사람들 등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남편이 행방불명되고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남편의 실체를 알아가는 아내는, 그 뒤에 감춰진 커다란 진실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부인과 남편, 남편의 동거녀, 동거녀의 친구, 그 친구의 남편 등 단순한 치정극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살인 사건이라는 중심 이야기를 사람들을 통해 흥미롭게 풀어가지만, 이 모든 것이 ‘사랑 놀음’이라는 식의 김빠지는 마무리는 하지 않는다.
영화는 미스터리한 사건과 거미줄처럼 연결된 관련 인물들의 관계를 정리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고, 어떤 식으로 인물들이 연결이 되며,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어떤 것이었고, 그래서 결국 반전은 무엇이다라는 식으로 전개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패전 일본이라는 시대상이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전쟁 발발국이지만 패전국이기도 한 일본이 전쟁 이후 어떤 고난의 시대를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인물들은 전후 일본이라는 시대적인 아픔이었고, 새로운 출발을 향한 생채기였으며, 지울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운명적 고난을 상징한다.
이누도 잇신은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구성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식에 충실하지는 않는다. 탄탄한 이야기의 전개가 흥미롭지만, 영화 후반부에 이야기를 한 번에 정리해주는 친절함도 보인다. 중간에 영화를 보지 않아도 내용은 따라갈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제로 포커스>는 ‘미스터리한 사건’보다는 ‘전후 일본의 시대적 아픔’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떤 경위를 통해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해결되었나보다 중요한 건, 그들이 왜 그런 일을 벌였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나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일본은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도 중요하다.
<제로 포커스>는 기존의 일본영화들과는 다르게 대규모 촬영이 이루어졌다. 도쿄, 이바라키, 시즈오카, 나가노 등 일본 전역에서 로케이션이 이루어졌고, 1950년대 배경을 위해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에서도 촬영이 이루어졌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 등 비교적 저예산 영화들을 만들었던 이누도 잇신 감독은 도호, 덴츠, 아사히TV 등 메이저 스튜디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촬영했다. 여기에 <굿’바이>의 히로스에 료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나카타니 미키, <전차남>의 기무라 타에 등 일본의 대표적인 여배우들도 함께 했다. 덕분에 <제로 포커스>는 일본 아카데미에서 영화상 주요 부분의 11개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제로 포커스>는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이라는 외피를 두른 채, 전후 일본의 시대상과 그 안에서 파괴되어 가는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시대적인 모습과 캐릭터의 감정선을 잘 짚어주는 연출, 인물들의 깊은 슬픔을 제대로 표현한 연기,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대가의 탄탄한 원작 등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이야기적인 재미는 물론,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의도 역시 적절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2010년 3월 19일 금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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