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과 겨울방학을 맞아 다양한 애니메이션이 극장에 걸리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TV 시리즈부터 독특한 형식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아이돌 밴드의 속편, 철학적인 세계관의 셀 애니메이션에 3D 입체 애니메이션도 있다. 이제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만화로 분류되는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아니다. 극영화 못지 않은 이야기와 애니메이션 특유의 표현 방식으로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 불고 있는 3D의 광풍을 진두지휘한 것 역시 애니메이션이다. 픽사와 드림웍스, 소니픽쳐스 등 CG 애니메이션의 대표 제작사들이 디지털이라는 기본 바탕 위에 입체영상이라는 최신 트렌드를 얹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2D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요즘의 추세는 이 모든 시도가 공존하는, 애니메이션의 다양화가 극에 달한 시대다.
인기 TV 시리즈의 극장 공략
<극장판 포켓몬스터 DP: 아르세우스 초극의 시공으로>
<극장판 포켓몬스터 DP: 아르세우스 초극의 시공으로>
지우와 피카츄 일행은 한 마을에 전해지는 전설을 듣게 된다. 옛날 환상의 포캣몬 아르세우스는 마을로 떨어지는 거대한 운석을 몸으로 막아 사람들을 구했지만, 그로 인해 힘을 잃는다. 하지만 다모스라는 남자가 아르세우스의 힘을 되찾아주고, 아르세우스는 ‘생명의 보옥’을 만들어 다모스에게 빌려줘 마을을 풍요롭게 한다. 하지만 다모스는 ‘생명의 보옥’을 돌려주지 않고 포켓몬과 함께 오히려 아르세우스를 공격한다. 이에 분노한 아르세우스는 마을을 공격해 황폐하게 만든다. 지우 일행은 마을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다모스가 ‘생명의 보옥’을 돌려주기로 했던 과거의 그 날로 이동한다.
<포켓몬스터>는 TV 시리즈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고, 게임과 캐릭터 상품으로 이어져 포켓몬스터 신드롬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자신을 희생해 큰 힘을 발휘하는 작고 귀여운 포켓몬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때로는 감동을, 때로는 정의감을 불타오르게 하는 등 TV를 시청하는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줬다. 극장판 <포켓몬스터>는 1998년 일본에서 개봉한 <뮤츠의 역습>이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영화는 65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성공을 거뒀고, 이후 극장판 시리즈는 평균 46억 6,000만 엔이라는 엄청난 흥행수입을 올리며 명실상부 TV 애니메이션의 성공적인 극장판 시리즈로 기록됐다. 그 12번째 작품이 크리스마스와 겨울방학에 우리를 찾아온다.
<극장판 포켓몬스터 DP: 아르세우스 초극의 시공으로>(이하 ‘<아르세우스>’)는 2007년에 개봉한 <디아루가 VS 펄기아 VS 다크라이>와 2008년 <기라티나와 하늘의 꽃다발 쉐이미>에 이어지는 DP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3부작의 완결편이다. TV의 재미였던 지우와 피카츄의 모험과 액션은 물론, 시리즈 최초로 시공을 넘나드는 액션을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에는 인기 TV 시리즈가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충성도 높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에서 먼저 개봉한 <아르세우스>는 12일 만에 210만 명의 관객을 모아 <포켓몬스터> 시리즈 누적 관객수 5,000만 명을 돌파했다. 고정 팬인 아이들은 물론, TV나 게임으로 익숙한 청소년과 어른들이 보기에도 무난한 <아르세우스>는, 원소스멀티유즈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블랙 코미디를 완성한 스톱모션 기법
<판타스틱 Mr. 폭스>
<판타스틱 Mr. 폭스>
12년 전, 도둑질에서 손을 씻고 지역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살고 있는 Mr. 폭스. 큰 맘 먹고 지상에 새 집을 마련하지만, 주변에 들어선 양계장, 칠면조장, 사과 주스 창고가 잠자는 본성을 깨운다. 정직한 삶을 강조하는 부인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유혹을 이기지 못한 Mr. 폭스는 세 장소를 차례를 털다가 덜미가 잡혀, 농장주 3인방의 습격을 받는다. 저격수를 고용하고 포크레인으로 땅까지 파헤치는 농장주 3인방. Mr. 폭스는 할 수 없이 가족들을 이끌고 땅 밑으로 내려와 위기를 극복한 작전을 세운다.
<판타스틱 Mr. 폭스>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알려진 로알드 달의 원작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게다가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로얄 테넌바움> 등을 연출했던 웨스 앤더슨이 메가폰을 잡았다. 독특한 사고와 개성 넘치는 연출로 가족이라는 주제를 새롭게 해석해 온 웨스 앤더슨은 농장주 3인방에 맞서는 여우 가족을 통해 블랙 코미디를 완성했다. 세련된 표현보다는 직관적인 이미지와 타이밍을 뺏는 호흡으로 독특한 전개 방식을 선보인다. 고전적인 전개와 음악은 영화의 재미를 더 한다. 조지 클루니, 메릴 스트립, 빌 머레이, 오웬 윌슨, 웰럼 데포 등 앞 다퉈 더빙에 참여한 스타들도 이 영화의 백미다.
<판타스틱 Mr. 폭스>가 극영화와 차별화를 이루는 점은 스톱모션 기법을 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점이다. 기존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들이 그 재질이나 표현 방식에 주력했다면, 웨스 앤더슨은 감정의 진행과 단절, 이야기의 흐름 조절, 사건 진행의 포인트 등 영화를 완성하는 구성 요소로서의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순간 멈추는 클로즈업이나 점프 컷을 통한 액션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의 공허함과 폐부를 찌르는 유머를 함께 전한다.
속편으로 돌아온 앙증맞은 CG 캐릭터들
<앨빈과 슈퍼밴드 2>
<앨빈과 슈퍼밴드 2>
미국은 물론 북극의 에스키모에게까지 절대적인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인 아이돌 스타로 급부상한 앨빈, 사이먼, 테오도르는 월드 투어 일정을 끝내고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미 슈퍼스타인 그들은 가는 곳마다 스포트라이트를 피할 수 없다. 그러던 중, 학교를 대표해 음악대회에 나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앨빈과 슈퍼밴드. 하지만 앨빈의 개인 활동으로 팀에 와해 분위기가 감돈다. 그러던 중 그들 앞에 나타난 걸그룹 ‘원더멍스’. 두 팀은 학교대표로 음악대회에 나가기 위해 뜨거운 대결을 펼친다.
2007년, 무려 3억 5,000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기록했던 <앨빈과 슈퍼밴드>의 속편이 나왔다. 속편 역시 전편과 마찬가지로 귀여운 다람쥐의 아이돌 성공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에 대적할만한 걸그룹을 등장시켜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그래봐야 결국 다람쥐일 뿐이지만, 영화 속 대사처럼 누가 노래하고 춤추는 다람쥐들을 당해내겠나? 더욱이 재치 있는 ‘말발’과 귀여운 외모까지 갖추고 있으니 내추럴 본 아이돌이다. 그런 이유로 <앨빈과 슈퍼밴드 2>는 아이돌 문화를 경험한 어른들에게 더 어울린다. 귀여운 다람쥐들의 재롱을 보고 흥겨운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모든 세대가 즐길 수는 있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이해하고 캐릭터의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더욱 어울린다.
<앨빈과 슈퍼밴드 2>는 CG 애니메이션으로 그래픽과 실사가 결합된 형태다. 이미 이런 형태는 오래전부터 만들어져 왔지만, 얼마나 실제같이 잘 붙느냐가 관건이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연기를 하는 인물들의 자연스러움은 물론, 그래픽으로 태어나 현실에서 살아가야 하는 캐릭터들의 액션도 중요하다. 영상과 함께 음악과 더빙도 중요하다. 미국식 농담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 노래하는 아이돌 다람쥐라는 확실한 컨셉도 잘 살려야 한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음악이 귀를 사로잡아야 하니까.
일본 원작과 할리우드 기술력
<아스트로보이: 아톰의 귀환>
<아스트로보이: 아톰의 귀환>
메트로 시티 최고의 과학자 텐마 박사는 로봇 시험 중 사고로 아들을 잃는다. 자신의 실수로 아들을 잃은 것을 괴로워하던 박사는 아들의 DNA를 이식해 인간의 감성을 지닌 로봇 아스트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아스트로의 존재를 알게 된 독재자 스톤 총리는 아스트로의 생명 에너지를 차지하기 위해 군대를 보낸다. 공격을 받고 메트로 시티 아래로 떨어진 아스트로. 그곳에서 로봇을 사냥하는 코라 일행과 친구가 되지만, 악당 햄에그의 계략으로 상대를 죽여야 끝나는 로봇 서바이벌에 나가게 된다. 한편 스톤 총리는 아스트로를 없애기 위해 최강의 전투로봇 피스키퍼를 출격시킨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이름을 달았지만, 맞다, 바로 아톰이다. <스타워즈>의 C-3PO와 <금지된 세계>의 로비와 함께 로봇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그 아톰이다. 1951년 데츠카 오사무에 의해 태어난 아톰은 지난 60여 년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름을 알려왔다. 일본은 물론 미국을 포함한 40여 개국에서 높은 시청률 속에 방영돼, 가장 인간미 넘치는 로봇 캐릭터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일본에서 태어나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았던 귀여운 로봇 아톰이 2009년, 할리우드의 자본력과 기술력을 등에 업고 새로운 CG 캐릭터, 아스트로로 재탄생했다.
<아스트로보이: 아톰의 귀환>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일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이다. 할리우드는 새로운 로봇 캐릭터를 창조하는 대신에, 아톰 캐릭터에 현란한 비주얼의 옷을 입혀 미국식 꼬마 영웅으로 부활시켰다. 과거 아톰을 보고 자란 세대가 직접 아톰의 개발에 뛰어들면서 셀 애니메이션으로는 부족했던 영상을 각종 그래픽으로 만회한 것이다. 물론 아이들의 정서에 맞는 교훈적인 메시지도 놓치지 않는다. CG 비주얼로 새로워진 아톰이지만, 그동안 아톰에 갖고 있던 정서는 여전하다.
업그레이드 재패니메이션
<동쪽의 에덴 극장판 1>
<동쪽의 에덴 극장판 1>
졸업여행으로 미국에 간 모리미 사키는 백악관 앞에서 나체의 남자를 만난다. 기억을 잃은 채 권총과 82억의 전자 화폐가 충전된 휴대폰을 쥐고 있는 남자는 타키자와 아키라. 그는 100억이 든 휴대폰으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선택받은 12명 중 한 명이다. 어느 날, 60발의 미사일 공격의 위험과 맞선 그는, 끝까지 자신을 믿어준 모리미 사키에게 메시지가 담긴 휴대폰을 건네고 사라진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모리미 사키는 그가 남긴 메시지를 단서로 타키자와 아키라를 찾아 뉴욕으로 향한다. 과거의 기억을 지워버린 타키자와 아키라는 다시 한 번 세상과 대결을 펼쳐야 한다.
2009년 4월 일본의 후지 TV에서 방영됐던 <동쪽의 에덴>은 TV 방영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고, 극장 개봉 당일에도 전회가 매진되는 등 높은 관심을 끌었다. <동쪽의 에덴 극장판>은 2009년에 1편, 2010년에 2편이 나올 예정으로, 세상과의 싸움을 시작한 남자와 그를 지켜주는 여자와의 11일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세상을 향한 미스터리한 사건과 의문의 인물을 중심으로 진지한 세계관을 다루고 있다. <동쪽의 에덴 극장판>의 감독은 <공각기동대> 시리즈를 연출한 카미야마 켄지 감독이 맡았고, <허니와 클로버>의 원작자 우치코 치카도 제작에 참여했다. 카미야마 켄지 감독은 원작, 각본, 감독을 맡아 <공각기동대> 시리즈를 뛰어넘는 치밀하고도 환상적인 영상을 보여주고, 우미노 치카는 캐릭터 디자인을 맡아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동쪽의 에덴 극장판>은 기존의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를 이루기 위해 기술적인 시도를 한 작품은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의 형태에 색다른 비주얼과 이미지를 더하기는 했으나 기술적인 도전은 아니다. 이야기 자체가 담고 있는 심도 깊은 세계관을 치밀하게 드러내는 것에 비중이 높다. 세상을 구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적인 한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화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극영화의 소재로도 손색이 없는 이야기는 캐릭터의 표현과 배경의 창조 등에 있어서도 철학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3D 입체 애니메이션의 진일보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먹을 거라고는 정어리 밖에 없는 작은 도시 ‘꿀꺽퐁당’ 섬. 어딘지 2%가 부족한 발명왕 플린트는 물을 음식으로 바꾸는 수퍼음식복제기를 발명한다. 하지만 실험도중 기계는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실패에 낙담하고 있던 차에 마을에 햄버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하늘로 올라간 수퍼음식복제기가 작동하면서 하늘에서 음식을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점점 많은 음식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섬을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시장의 탐욕으로 인해 기계는 오작동을 일으킨다. 집채만한 팬케이크와 사람만한 핫도그 등 점점 거대해지는 음식 비. 결국 플린트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하늘로 올라간다.
30년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동명의 스테디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최초의 음식 재난 블록버스터라는 홍보 카피를 달고 있다.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구성된 이야기는 67회 골든글로브 애니메이션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등 완성도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미국에서 먼저 개봉해 2주 동안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하며 흥행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3D 입체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잘 살림과 동시에 지금까지의 애니메이션들과 기교해 높은 상상력과 기술력을 보여준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이하 ‘<하늘 음식>’)의 가장 큰 볼거리는 3D 입체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다. 사실 애니메이션에서 3D 입체영상은 어느 정도 익숙해질 정도로 자주 시도되어 왔다. 하지만 <하늘 음식>은 3D 입체영상 기술에 특히 관심이 많은 소니 픽쳐스에서 제작했다는 점에서 더 많은 관심을 모은다. 이미 <폴라 익스프레스> <몬스터 하우스> <부그와 엘리엇> 등 3D와 CG 애니메이션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보인 소니 픽쳐스는 픽사, 드림웍스 등과 함께 3D 입체 애니메이션 제작사로서 탄탄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하늘 음식>은 그동안 쌓아온 소니 픽쳐스의 기술적인 노하우와 탄탄한 원작의 결합으로 3D 입체 애니메이션의 진일보를 보여줄 것이다.
2010년 1월 4일 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