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의 영화계 화제는 ‘교차상영’ 논란이다. 개봉 첫 주 1위를 달렸던 <집행자>가 2주차에 들어 돌연 ‘퐁당퐁당’에 들어갔고, 그보다 앞서 주호성은 자신이 제작한 영화 <하늘과 바다>의 프린트를 전면 회수했다. 악의적 소문과 특정 영화 죽이기라는 근거 없는 음모론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이에 극장 측은 (<하늘과 바다>를 겨냥해) “흥행 실패의 책임을 극장에 떠넘기려는 의도”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시차를 두고 문제가 되면서 <집행자>는 애매한 지경에 빠졌다. <하늘과 바다>의 경우야 시작부터 워낙 죽을 쒔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집행자>는 썩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음을 감안할 때 억울함이 더할 만도하다.
이 같은 제작사와 극장 사이의 갈등(교차상영)이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2006년 현진시네마와 CGV사이에서 벌어진 <홀리데이> 조기종영 사태와 2008년 밴티지홀딩스와 CGV 간의 <크로싱> 스크린 배분문제가 그랬다. 그나마 이들 영화는 일정 규모의 투자 배급사를 등에 업은 탓에 상대를 협상테이블까지 끌어들이거나 이슈화시킬 수 있었지만, 홍보마케팅 할 자본이 없는 군소제작사의 영화들은 어김없이 퐁당퐁당의 늪으로 끌려들어가 교차상영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다.
논란의 이면에는 당연히 ‘상영관 독점’이 존재한다. 이번 사태 역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2012>의 개봉과 맞물려 벌어진 일이다. 급기야 <집행자>의 제작자 조선묵은 삭발을 감행했고 주연배우 조재현은 유인촌 장관을 만나 해결을 읍소하기에 이르렀지만 명쾌한 답이 나온 건 없다. 영화진흥위원회도 “인위적 개입은 힘들다”는 입장인데다가, 유 장관은 “서로 논의를 해보다가 안 되면 공정위에 제소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뉘앙스의 발언을 남겼을 따름이다.
앞선 사례들이 보여주었듯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법적으로도 강제할 장치가 없을 뿐 아니라, 이미 공정위에서 한 번 다뤄진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년 1월 발표된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에 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에 따르면 “배급사와 극장이 상영시간을 반드시 서면으로 계약하라”고 했으나 배급과 상영방식에 대하여 그때마다 극장과 배급사가 서면으로 계약을 작성해야 하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그렇다고 공정위가 극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고 보기도 힘들다. 문화와 산업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접근하기에는 영화의 영역과 시장이 너무 커져버렸고 논의의 단순화를 적용하기 힘들만큼 이해당사자가 널린 까닭이다. 문화다양성을 내세워 관객의 볼 권리를 내세우는 제작사와 자본의 논리를 내세운 극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힘들게 만든 영화가 관객의 평가를 얻을 최소한의 기회조차 잃어버리고 경제적 손실까지 초래할 것이 자명한 마당에 제작사 입장에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마땅히 호소할 곳도 적절한 중재기구도 없는 환경에서 <집행자> 측이 내린 고육지책을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다만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필름을 회수하거나 장관을 만나거나 영화계 고위인사의 입김에 기대려 해서는 곤란하다. 가능하다면 시장의 자정기능을 최대한 믿고 맡기되 억울함을 알리려는 적극적인 투쟁과 더불어 법과 상호규약의 테두리 안에서, 무엇보다 영화계 내부에서 타결점을 찾으려는 노력 또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 의도가 선하다하더라도 외부의 힘에 기대어 해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법으로 강제한 결과가, 백기사가 아닌 흑기사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한번 법으로 해결하고 나면 그 만능주의에 탐닉하다 보면, 언젠가는 외부의 칼날에 영화계 전체가 좌지우지될 수도 있음을, 법의 그늘 아래서 움직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09년 11월 19일 목요일 | 글_백건영 편집위원(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