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국 사회에서 ‘단일 민족’이라는 말은 점차 힘을 잃는 듯하다. 어느 농촌 드라마에는 남아시아 계열의 며느리가 가족의 구성원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여겼던 ‘인종 차별’이라는 용어 역시 성큼 성큼 우리의 현실이 되어버렸다. 명절 때, 방영되고는 하던 ‘외국인 가요제’에서나 보던 ‘외국인’들은 이제 일상 곳곳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로니를 찾아서>(이하 <로니>)와 <바람이 머무는 곳 히말라야>(이하 <히말라야>)는 모두 우리 주위에 머물다가 불쑥 사라져버린 두 명의 외국인 남성들을 찾아 나서는 두 한국인 사내들의 이야기다. <히말라야>는 고인(故人)의 유골을 가지고 네팔에 있는 그의 가족을 찾아가는 ‘최’(최민식)의 이야기이며, <로니>는 ‘로니’라는 스리랑카 남자에게 우연히 혼쭐이 난 후 무작정 그를 찾아 나선 태권도 사범 인호(유준상)의 이야기이다.

타인의 얼굴로 자신을 보다.

하지만 <로니>와 <히말라야>는 모두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에 방점에 찍혀 있는 영화들은 아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화자들은 모두 한국의 중년 남자들이다. 두 영화들은 모두 한국의 현실/가정에서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버린 남자들이 무시하거나(<로니>) 관심을 두지 않았던(<히말라야>) 외국인 노동자들의 세계를 접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이야기를 각기 다른 형식으로 이야기한다. 전수일의 <히말라야>는 매우 과묵한 영화다. 단속반을 피해 도망치다가 사망한 네팔 청년 ‘도르지’의 유골함을 품고 네팔을 찾은 ‘최’는 쉽사리 속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다. 영화는 이 ‘최’의 과묵한 여정을 묵묵히 쫓아간다. 그가 ‘기러기 아빠’라는 사실도 현재 ‘실업 상태’라는 것 역시 영화가 중반을 훌쩍 넘어서야 그의 전화 통화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심상국의 <로니>의 주인공인 인호는 말이 많은 편이지만 그의 영화 속 언행은 응축된 분노와 폭력으로부터 비롯된다. 태권도 사범인 그는 지역 사회의 방범 대장이 되는데, 영화의 전반부에 등장한 한 장면에서 검은색 선글래스를 쓴 그의 모습은 박정희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한국 마초 남성의 얼굴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유야 어쨌든 ‘최’와 인호는 모두 자신의 훼손된 남성성 때문에 방황하는 인물들이다. <로니>의 인호는 조금 더 ‘훼손된 남성성’의 원인이 구체적으로 등장하는데, 영화의 제목처럼 그가 ‘로니를 찾아서’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이유는, 그가 부진한 태권도 도장을 살리기 위해 벌인 이벤트에서 로니(마붑 알업)가 등장해 그를 일격에 기절시켜 지역 사회에서 망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로니>의 인호는 과도한 마초적 자의식 때문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린 존재다. <로니>는 그래서 일종의 로드 무비가 된다. ‘국경 없는 마을’이 있는 안산 원곡동에서 출발한 영화는 외국인들이 살고 있는 허름한 도시의 뒷골목을 배회하는 씩씩거리는 남자의 궤적을 뒤쫓는다. 그의 분노는 (많은 한국인들이 그러한 것처럼) 외국인을 향한다. 반면 <히말라야>의 ‘최’는 좀 더 본질적으로 자신이 상실한 ‘가족’의 그림자를 네팔에서 만난 도르지의 가족에게서 발견한다. 의도적으로 ‘최’는 도르지의 죽음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그는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히말라야에서 스스로의 내상(內傷)을 치유하는데 몰두한다. ‘최’는 어렵게 히말라야의 산마루에 위치한 마을에 오르다가 ‘고산병’에 걸리고 ‘도르지’의 가족들은 ‘최’를 정성드려 치유한다. 인호에 비하면 ‘최’가 도르지의 가족을 대하는 방식이 친절한 편에 속하지만, 사실 ‘최’ 역시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기적인 한국 사내인 것은 마찬가지이며, 어쩌면 그의 ‘암묵적인 거짓말’은 인호가 행하는 신경질적인 언어폭력에 비해 좀 더 지독한 행위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스리랑카와 히말라야

말하자면 <로니>와 <히말라야>는 모두 일종의 역할 바꾸기 게임과 같다. <로니>의 인호는 영화 속의 여정을 통해 ‘로니’ 대신 그의 친구인 뚜힌(로빈 쉬엑)을 만난다. 하지만 뚜힌은 그저 순박하고 착하거나 아니면 범죄자로 스테레오 타입화되어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선입견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로니를 찾던 인호가 찾아낸 뚜힌은 오히려 인호에게 ‘삽겹살에 소주나 한 잔 할까?’라고 말할 만큼 영악한 인물이다. <로니>의 야심은 바로 이 뚜힌이라는 캐릭터에 있다. 영화는 때로는 얄밉게 보일만큼 한국 사회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이 캐릭터와 인호와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공을 들인다. 뚜힌은 인호가 전혀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인물이다. 그리고 인호는 영화 상영 시간의 거의 2/3의 시간 동안 그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대사를 반복한다. 이런 캐릭터간의 관계가 한국인의 입장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시선 즉 ‘원하지 않는 손님’이라는 시선의 은유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하지만 뚜힌과 인호의 관계에서 ‘주도권’은 종종 인호가 아니라 뚜힌에게 넘어간다. 가령 영화의 중후반부에서 스리랑카 식당에서 오히려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은 인호다. 물론 인호는 자신의 마초성 때문에 그 사실을 참아내지 못하지만, 영화는 결국 인호가 그런 뚜힌에게 동화되고 친구가 되기까지의 감정 변화에 주목한다. 아쉽게도 <로니>의 후반부의 이런 인호의 감정 변화는 좀 가파르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지만, 적어도 <로니>가 흥미로운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반면 <히말라야>의 역할 바꾸기 게임은 좀 더 근본적이다. 히말라야의 산간 마을을 찾아간 ‘최’는 절대적인 이방인이다. 그는 종종 ‘다르지’의 가족들을 관찰하는 위치 즉 스크린의 한쪽 구석에 밀려나 있다. ‘최’는 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 가족과 같이 생활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손님’일 뿐이다. 사실 ‘최’가 가지고 있는 ‘도르지’에 대한 기억은 매우 희미할 뿐이다. 그는 ‘이방인’으로 마을에 거주하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갈 뿐이다. 다만 그가 마을에서 만나는 ‘백마’의 이미지는 절망에 빠져있는 그가 느끼는 삶에 대한 희망일 것이다. 전수일 감독은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롱 테이크와 과묵하고 관조적인 태도로 미세하게 변화하는 ‘최’의 심경을 담아내는데 주력한다. 적어도 ‘최’가 히말라야에서의 삶을 통해 어떤 변화를 하게됨은 분명해 보인다.

DVD

<로니를 찾아서>와 <바람이 머무는 곳 히말라야>은 모두 저예산 영화들이다. 당연히 DVD 역시 그리 훌륭한 영상 표현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HD로 촬영된 <로니를 찾아서>의 경우는 국내 영화들의 평균적인 영상 퀄리티 정도는 담고 있다. 반면 영화 촬영 자체가 그리 녹록치 않았을 네팔에서 대부분 촬영된 <바람이 머무는 곳 히말라야>의 경우에는 실내 장면이나 밤 장면 등에서 조명량 자체가 많지 않아 실내 장면 등에서의 잡티나 지글거림이 꽤 많이 발견된다. 물론 감상 자체에 문제가 있을 정도는 아니며 이는 어느 정도 감독이 의도한 바이기도 한다. 음향 퀄리티 두 편의 DVD 모두 역시 강력함보다는 깔끔한 소리 구현에 집중하고 있다. <로니를 찾아서> DVD의 경우에는 서플먼트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아쉬움을 주며,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바람이 머무는 곳 히말라야>의 경우에는 별도의 디스크에 ‘메이킹’, ‘감독 인터뷰’, ‘최민식 인터뷰’ 등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