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장진의 영화는 추종 세력을 몰고 다녔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나 외형적인 스타일, 연출 방법 등 기존의 영화들과는 변별점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웃음을 유발하는 타이밍이 남달라, ‘장진식 코미디’라는 말까지 생겼다. 하지만 제작이나 각본에 참여한 장진은 자신의 스타일이 일부 추종 세력을 위한 것이 아닌 대중적인 성공에도 근접했음을 보여줬다. 대중 감독이 되면서부터 그의 영화는 독특한 웃음보다는 대중들이 좋아할 상업영화의 아이템으로 그 방향을 선회했다. 이번에 선택된 아이템은 대통령이다.
임기를 6개월 남긴 서민 대통령 김정호(이순재)는 우연히 참석한 행사에서 응모한 로또가 1등에 당첨되며 244억의 당첨금의 주인공이 된다. 국민 대통합과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온 인생을 바친 그는 그날 행사에서도 로또가 당첨되면 모두 기부하겠다는 말까지 해놨으니 하루하루가 갈등의 나날이다. 김정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차지욱(장동건)은 5살 아이를 둔 최연소 꽃미남 대통령. 한반도의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강직함을 보이면서도 짝사랑하는 이연(한채영) 앞에서는 수줍어하는 순정파다. 그러던 어느 날, 괴청년(박해일)으로부터 자신의 아버지와 체질이 맞는 특이 체질 대통령에게 신장 이식을 요구 받는다. 차지욱을 이어 정권을 이어받은 사람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 한경자(고두심). 야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에 오른 한경자의 가장 큰 문제는 청와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편 창면(임하룡)이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2차로 청와대로 올 정도로 대책이 없는 인물. 여러 문제를 일으키던 창면은 급기야 대통령 재임 중 이혼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장진 감독이 자신의 주특기인 코미디로 다시 돌아왔다. <아는 여자>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겉돌던 그가 대통령이라는 나름 자극적인 소재를 들고 왔다. 하지만 정치색은 완전히 걷어내고 오로지 인간적인 측면에만 치중한다. 대통령은 하늘에서 점지해준다지만 그래봐야 한 사람의 아버지이자, 남편이고, 국민이다. 장진은 그런 그들의 일상생활에 무게를 싣고 있다. 244억 원의 로또 당첨금에 가슴 떨리는 대통령,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신장 이식을 요구받는 대통령, 청와대와 외교 활동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편으로 인해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대통령을 소재로, 우리가 쉽게 접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대통령이라는 거리감 느껴지는 대상이 그래봐야 결국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시작한다. TV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 신문에 나오는 그들의 정치 활동 외에 공개되지 않은 그들의 생활상과 내적 고민, 깊은 속내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일상의 웃음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로또에 당첨된 기쁨으로 병원에 실려 가고, 낮술에 취해 기자 회견을 하고, 짝사랑 여인 앞에서 방귀까지 뀌고, 심지어 남자 영부인은 2차 술자리를 집에서 하겠다며 친구들을 청와대로 끌고 온다. 일반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평범했을 얘기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상의 낯섦을 자연스럽게 웃음으로 치환했다.
하지만 이는 대통령이라는 존재 자체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전제가 깔려 있기에 가능하다. 그들의 평범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웃음이 발생하고, 평범한 말투나 일상적인 행동을 통해 코미디를 만든다. 결국 그들은 어쩔 수 없는 벽을 사이에 둔 인물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분히 일상적인 제스처만으로도 관객을 웃길 수 있다는 예상이 가능했으리라. 상대적으로 손쉬운 설정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장진 감독이기에 민감한 사안은 피해가면서 상업영화의 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통령과 정치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배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니까.
그렇다고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이런 현실적인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이슈인 민주화나 국민대통합, 촛불, 남북문제, 한일 관계, 부동산 투기, 국가의 개인 사찰 등에 대한 언급도 스치듯 거론된다. 어차피 정치라는 것이 우리네 삶과 완벽히 분리될 수는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적극적으로 반영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장진이라도 아직은 정치나 대통령을 소재로 직접적인 코미디를 만들기에는 의식해야 할 고려 사항이 많은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웃기는 영화다. 중간 중간 폭소를 자아내는 장면도 나오고 전개 자체도 밝고 유머러스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웃음의 근간은 계층과 계급 간의 충돌에서 오는 아이러니도 많다. ‘대통령이 그래도 되나?’, ‘대통령인데?’ 하는 전제 때문에 뒤에 오는 낯선 상황에 웃을 수 있다. 하지만 대단하신 대통령이 서민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만으로 웃음을 준다는 것에는 씁쓸한 기분도 든다. 지금껏 단 한 분을 제외하고는 계급 간의 벽을 허물기 위한 노력을 한 대통령이 없었기에, 대통령의 평범함이 웃음의 소재가 된다는 현실 자체가 안타깝다. 심지어 그것이 전 국민의 ‘유쾌함’으로까지 이어지니 영화와 현실의 간극이 더 크게 느껴진다.
구조적으로 영화는 3대 정권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김정호 대통령 시절의 최연소 야당 총재 차지욱은 차기 대권 주자이면서 그의 아버지가 과거 김정호 대통령과 함께 정치 일선에 있었다는 설정을, 한경자는 두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과 야당 총재를 역임해 연결고리를 갖는다. 또 김정호의 딸로 나오는 이연 역시 차지욱과 멜로 라인을 만드는 등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여기에 경호실장, 요리사 등은 정권에 상관없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 준다. 비록 각 이야기는 연관성이 조직된 독립적인 구성의 옴니버스지만, 공통분모의 역할을 하는 인물들 덕분에 안정적인 짜임새를 갖춘다.
장진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소재의 영화를 만든다면 누가 대통령을 되어야 할까에 대한 모범 답안이라고 말한다. 연륜을 갖춘 서민 대통령의 이순재, 젊은 대통령이 필요하다면 장동건, 카리스마를 갖춘 여성 지도자라면 고두심이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이들의 평소 이미지는 속 캐릭터로 잘 반영됐다. 이순재는 시트콤으로 바뀐 친근한 이미지를 많이 드러내며, 장동건은 평소의 말투를 그대로 쓰며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고두심 역시 부드러움과 카리스마를 모두 갖춰 기존의 이미지를 잘 활용한다. 하지만 이들의 캐릭터는 대통령이라는 굴레에서 낮은 자유도를 지닌다. 아무리 상상 속의 유쾌한 대통령이라지만 그 경계가 완전히 허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반면 이들을 보좌하는 보좌진은 영화의 이곳저곳에서 영화의 색깔에 맞춘다. 남자 영부인 역할을 하는 임하룡은 여전히 코믹한 시퀀스들을 담당하고 있고, 대통령의 딸, 야당 대변인, 대통령의 연인으로 나오는 한채영 역시 많은 비중은 아니지만 자기 몫을 해낸다. 하지만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진짜 주인공들은 따로 있다.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요리사 이문수, 대통령의 그림자로 그나마 장진식 코미디라 불릴 수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주진모, 대통령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괴청년 박해일, 북한밀사 류승룡, 그 외 이한위, 장영남, 이해영 등은 영화의 코믹함과 현실의 비판적인 관점을 모두 소화한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우리나라 최초로 대통령과 청와대, 정치 일선을 적극적인 소재로 다룬 영화다. 하지만 정치적인 색을 완전히 덜어내고 오롯이 인간이라는 소재 자체에만 집중한다. 덕분에 영화는 너무 이상적이고 공상적인 이야기와 인물을 만들어냈다. 영화는 기를 쓰고 현실과 분리된 행복한 상상을 펼쳐 보이지만, 보는 내내 현실 문제를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소재를 너무 가볍게 다룬 탓도 있다. 그리고 소재와 다르게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장진의 솜씨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평소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화려한 출연진을 보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장진 특유의 유머는 찾기 어렵다. 다른 상업 감독이 찍었어도 비슷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장진 감독이 만드는 대통령 소재의 영화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는 ‘어떤 것’에 대한 함량 미달이 아쉽다. 그것이 영화 내적인 것이든, 외적인 것이든지 간에 말이다.
2009년 10월 20일 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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