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배경으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었다. 얼핏 들으면 <러브 액츄얼리>가 떠오를 정도로 그닥 신선한 기획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사랑은 수 없이 자주 그려져 왔던 이야기니까. 하지만 <뉴욕 아이 러브 유>는 조금 기대를 갖게 한다. 나열하기도 힘들만큼 엄청난 스타 배우들과 이와이 슈운지를 필두로 영화 꽤나 찍었다는 감독들과 함께 감독으로 데뷔하는 나탈리 포트만도 참여했다. 올해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뉴욕 아이 러브 유>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오로지 사랑을 향한 감성으로만 똘똘 뭉친 영화다.
소매치기 벤(헤이든 크리스텐슨)은 슬쩍한 지갑에 있던 사진 속 여인 몰리(레이첼 빈슨)를 꼬셔보려고 하지만 그 옆에는 매력적인 중년남 개리(앤디 가르시아)가 있다. 사랑을 위해 종교를 바꾸고 삭발까지 단행한 리프카(나탈리 포트만)는 행복한 결혼식을 치루며, 영화음악 작곡가인 데이빗(올랜도 블룸)은 일면식도 없이 전화로만 만나는 스크립터 까미유(크리스티나 리치)를 사랑하게 된다. 삽화 작가(에단 호크)는 길거리에서 만난 여인(매기 큐)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며 현란한 작업 기술을 선보이지만 황당한 얘기를 듣고, 졸업파티 직전에 여자 친구에게 버림받은 소년(안톤 옐친)은 휠체어를 탄 약사의 딸(올리비아 씰비)과 함께 졸업 파티에 가서 잊을 수 없는 밤을 보낸다.
중년의 오페라 가수 이사벨(줄리 크리스티)은 어린 호텔 벨 보이(샤이아 라보프)와 깊은 교감을 나누고, 원나잇 스탠드 커플인 거스(브래들리 쿠퍼)와 리디아(드리아 드 마테오)는 다시 만나 불안했던 사랑을 확인한다. 레스토랑 밖에서 서로를 유혹하던 알렉스(크리스 쿠퍼)와 안나(로빈 라이트)는 레스토랑 안에서 다시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주변의 씁쓸한 시선 속에서도 흑인 아빠(카를로스 아코스타)는 백인 딸(테일러 기어)에게 한없는 사랑을 준다. 자신의 모델이 되어 달라는 백인 화가의 구애를 받는 중국 여인(서기)은 그의 죽음을 목격하고, 오랫동안 정을 나누며 살아왔지만 여전히 티격태격하는 노부부(엘리 웰라치, 클로리스 리츠먼)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로맨틱한 감정을 즐긴다.
<뉴욕 아이 러브 유>는 내용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글이 할애될 정도로 다채로운 영화다. 11편의 에피소드들은 뉴욕이라는 도시와 사랑이라는 주제로 모여 한 편의 장편을 완성했다. 그 안에는 남녀의 사랑, 부녀의 사랑, 노부부의 사랑, 종교와 나이,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 하룻밤의 풋사랑, 매력적인 중년의 삶, 얼굴을 보지 않고 싹트는 감정 등 그 범위도 광범위하다. 하지만 하나의 단편으로서 완결된 형태를 갖추고 있기 보다는 짧은 에피소드에 드러나는 감성을 전하는 것에 급급한 모습이다. 완벽한 이야기 구조가 아닌, 감성의 흐름을 파편처럼 흩어놓았지만 불완전한 이야기는 뉴욕이라는 공간을 통해 하나의 공통된 감성을 전한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압도적인 출연진에 있다. 엘리 웰라치, 클로리스 리츠먼과 같은 과거 흑백 영화의 스타들부터 제임스 칸, 줄리 크리스티, 앤디 가르시아, 크리스 쿠퍼, 로빈 라이트 등 중년의 배우들이 든든하게 자기 역할을 해낸다. 여기에 나탈리 포트만, 에단 호크, 올랜도 블룸, 크리스티나 리치, 서기 등 기존의 스타들과 레이첼 빈슨, 올리비아 씰비, 샤이아 라보프, 헤이든 크리스텐슨, 드리아 드 마테오, 안톤 옐친 등 최근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스타들까지 가세했다. 이야기가 많고 출연진이 많다 보니 각각의 배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할 수는 없었지만, 짧은 출연 시간 동안 강한 인상을 남긴다.
11편의 감독들도 그 면면이 나름 화려하다. 일단 일본의 대표적인 감성주의 감독 이와이 슈운지의 할리우드 입성과 배우 나탈리 포트만의 감독 데뷔가 눈길을 끈다. 올랜도 블룸과 크리스티나 리치를 앞세운 이와이 슈운지의 에피소드는 얼굴을 보지 않고 사랑을 키워가는 남녀의 유쾌한 해피엔딩을 그리고 있으며, 크리스티나 리치는 사회적인 편견과 현실의 불안함을 겪으면서도 딸을 향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표현했다. 이 외에도 <러시 아워> 시리즈의 브렛 라트너, <밴디드 퀸>의 세자르 카푸르, <햇빛 쏟아지던 날들>의 쟝 웬, <베니티 페어>의 미라 네이어, <데드 프레지던트>의 알렌 휴즈, <골든 에이지>의 세자르 카푸르, <미치고 싶을 때>의 파티 아킨 등이 참여해 각자의 감성을 잘 드러냈다.
많은 감독과 배우가 함께 작업한 <뉴욕 아이 러브 유>는 2일 간의 촬영과 7일간의 편집이라는 작업 규칙과 함께 뉴욕의 모습을 담은 사랑 이야기를 하되, 페이드 인/아웃은 없어야 한다는 규칙이 잘 지켜졌다. 8주라는 촉박한 제작 일정을 맞추기 위해 감독들은 열린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영화의 이야기가 짧은 에피소드와 감정의 흐름에 의존하다보니 구심점이 없다. 어떤 에피소드가 중심을 잡는다면 형평성에 어긋날 수도 있지만, 그저 감성의 흐름만 나열하는 것 역시 불안정하다. 또한 각기 다른 스타일의 감독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연출하다보니 톤이 튀기도 하고, 감독에 따라서 완성도의 차이도 보였다. 단연 이와이 슈운지의 에피소드가 최고였고, 그 외 브렛 라트너, 알렌 휴즈의 작품이 흥미를 끌었다.
2009년 10월 19일 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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