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커플이 있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여객선에 탑승한 남자 와 여자, 그들은 소년, 소녀 티 풀풀 날리며 이 신세계를 향하는 최고의 여객선의 첫 출항에 동행하지만, 각자가 기거하는 객실의 등급만큼이나 신분의 차이가 났지만, 진실한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그런 차이 쯤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불행은 그들 밖에서 다가왔다. 세계 최고의 여객선은 속절없이 부서져버렸고 그들의 사랑은 꽃을 피우기도 전에 무너지는 듯 했다. 하지만 그 남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결국 그 여자 케이트 윈슬렛을 끝내 살려낸다. 그리고 살아남은 여인의 가슴 속에는 영원히 그의 절절한 사랑이 남아 있다.
1997년 영화 <타이타닉>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은 그렇게 청춘을 찬양했다. 하지만 늘 푸를 것만 같았던 사랑의 정열은 어느새 시들어버리는 것 역시 세상의 참모습이기는 마찬가지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타이타닉>의 그 젊고 아름다우며 영원할 것만 같은 커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10여년만에 같이 출연한 영화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그 사이 케이트 윈슬렛은 영미권 국가 최강의 연기파 여배우의 자리에 올라섰고 디카프리오 역시 깔끔한 미소년의 얼굴이 아니라 수염이 더 어울리는 중년으로 접어들고 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이 두 배우의 힘을 동력 삼아, 한 때는 이상을 품었지만 서서히 현실의 때에 무너져버리는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다.
가정, 그 숨막히는 공간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과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윌러 부부는 <타이타닉>의 주인공들처럼 서로에게 한 순간에게 사로잡힌다. 중산층 동네인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도 그들은 ‘모범적인 부부’로 인식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들은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이웃과의 관계도 좋으며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집에서 살아가며, 남편인 프랭크는 시내의 번듯한 회사를 다니고 있다. 하지만 에이프릴에게 이 모든 것은 그녀를 옥죄는 일종의 감옥과 같은 것에 불과하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이 부부의 위기의 출발점을 명시한다. 배우를 꿈꾸던 에이프릴은 결국 그 일에서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실패는 늘 행복한 미소를 띄우며 살아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이 부부를 혼돈과 공포로 몰아놓는다. 그들은 마치 영화 상영 시간 내내 으르렁거렸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리처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처럼 거친 말싸움을 벌인다. 그 다음 시퀀스에서 이런 이들의 균열은 쉽사리 봉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사이의 심리적 균열은 그들의 깊숙한 내면부터 조금씩 무너뜨려버린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1955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1950년대의 미국은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가장 빠른 성장이 이루어졌던 이 시기의 미국은 누구나 ‘빨갱이’로 만들 수 있었던 ‘맥카시즘’의 얼굴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프랭크는 남들과 똑같은 중절모를 신고 코네티컷의 중산층 거주지에서 시내의 대형 빌딩으로 생기 없게 출근한다. 생명력이 없기는 고요한 집안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에이프릴에게서도 느껴진다. 재능의 한계를 체감하고 집안에 들어앉은 에이프릴이나 창조력이 필요 없는 일을 하며 가장 노릇을 하는 프랭크 모두 50년대의 미국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짓눌려 점차 질식해간다. 그들은 각자 ‘외도’를 통해 잠시의 일탈을 시도하기는 하지만 잠식되어버린 삶에서 벗어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으로 ‘파리’로의 탈출을 꿈꾸고 창조력과 삶의 활기를 되찾는다.
질식할 듯한 기성품 사회, 미국
샘 멘데스는 일찍이 <아메리칸 뷰티>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리고는 30년대를 그린 <로드 투 퍼디션> 다시 실체 없는 전쟁이었던 걸프전을 배경으로 한 <자헤드> 그리고 다시 50년대를 배경으로 한 가족극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만든다. 그리고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 이데올로기’의 허상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영화 속 ‘미국’ 가정은 현재이든 과거이든 모두 무너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영화 속에서 가장 단단한 연대는 <로드 투 퍼디션>의 막장에 몰린 킬러 부자에게서나 존재한다. 그의 전쟁 영화에서는 영웅이 없고 그의 가족 영화에서는 훈훈한 감정적 교류가 존재하지 않는다. 리처드 예이츠의 원작 소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도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중산층 가정은 내부로부터 서서히 무너져버린다.
이 영화에서 윌러 부부의 파리로의 탈출 계획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 정신병 환자인 존(마이클 새넌)뿐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윌러 부부를 둘러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 부부를 옥죄는 기성품 사회의 무게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윌러 부부의 파리 이주 계획 선언에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애써 이들 부부의 행동을 비웃는 켐벨 부부나 정신병에 걸린 수학자 아들을 지닌 기빙스 부부의 삶 역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들은 감히 탈출을 꿈꾸지 못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섬세한 샘 멘데스의 연출, 숨막힐 듯한 중산층 가정의 공기를 담아낸 로저 디킨스의 촬영, 신경질적인 심리를 담아낸 토마스 뉴먼의 음악 등 칭찬할만한 부분이 많은 영화지만 영화 전체를 끌고 나가는 두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뛰어난 연기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영화다. 특히 <더 리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바로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케이트 윈슬렛은 영화 전체의 정서를 끌고 나가는 섬세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더불어 이제 완전한 연기파 배우로 성장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호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단 두 시퀀스에 등장하지만 스크린을 장악하는 마이클 섀넌과 위선적인 교외 중산층 여인을 연기한 케시 베이츠를 비롯한 조연급 배우들의 연기 역시 뛰어나다.
깔끔한 완성도의 DVD
세트 촬영 없이 모든 장면을 실제 장소에서 촬영한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금년도 아카데미상의 미술상과 의상상에 노미네이션 될 만큼 영화적 분위기가 뛰어난 영화다. DVD 역시 깔끔하면서도 은근히 스산한 50년대 교외 지역의 분위기가 잘 살아 있다.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표현력 역시 깔끔하다. 드라마 장르의 특성상 화려한 음향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섬세한 감정을 담아낸 영화의 분위기를 담아낸 대사, 음향, 음악의 표현력은 모두 만족스럽다.
감독 샘 멘데스와 각본가 저스틴 헤이스의 음성 해설은 영화의 분위기처럼 깔끔하다. 원작 소설을 영화에 녹이기 위해 노력했던 각본가의 노력과 샘 멘데스의 섬세한 연출력을 느껴볼 수 있다. 29분 분량의 메이킹 다큐멘터리인 <Lives of Quiet Desperation>은 영화의 제작진과 출연진이 등장해 영화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차분하게 다루고 있다. 약 9분 분량의 '삭제 장면'은 프랭크와 아버지와의 관계라든가 주인공 부부와 친구 관계인 켐벨 부부와의 장면 등 좀 더 부연적인 설명을 담은 장면들이 담겨 있다. 이 '삭제 장면'에도 음성 해설이 포함되어 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출시일 : 2009-07-02
출시사 : 파라마운트
Starring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프랭크 휠러) / 케이트 윈슬렛(에이프릴 휠러) / 캐시 베이츠(헬렌 기빙스) / 캐이틀린 한(밀리 캠벨) / 마이클 섀논(존 기빙스)
Director : 샘 멘데스
Running Time : 119 Min
Video Format : 2.35:1 아나몰픽 와이드스크린
Audio Track : 영어, 태국어 돌비디지털 5.1
지역코드 : 3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디스크수 : 1disc
자막 : 한국어, 영어, 태국어, 인도네시아어, 광둥어, 북경어
서플먼트 : Commentary with Director Sam Mendes and Screenwriter Justin Haythe / Lives of Quiet Desperation: The Making of Revolutionary Road / Deleted Sce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