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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햄123'은 뉴욕 펠햄역에서 오후 1시23분에 출발하는 열차. 지하철통제센터의 배차원 가버(덴젤 워싱턴)는 모니터로 열차들의 움직임을 확인하다 펠헴123호의 차량이 분리된 것을 발견한다. 열차와 교신을 시도하던 가버는 기관사가 아닌 낯선 목소리를 듣고 열차가 괴한들에게 납치된 것을 알게 된다. 무리의 우두머리 라이더(존 트라볼타)는 가버를 통해 열차에 있는 시민들에 대한 몸값 1천 만 달러를 뉴욕시에 요구한다. 그리고 제한시간에서 1분 늦을 때마다 인질을 한 명씩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곧이어 경찰 내 테러전담반이 도착하지만 라이더는 가버만을 상대하겠다고 선언한다. 제한 시간을 몇 분 남겨두고 현금 수송 차량이 추돌하고 라이더는 가버에게 직접 현금을 가져올 것을 지시한다.
<서브웨이 하이재킹: 펠햄123>(이하, '펠햄123')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와 납치, 인질 코드는 자연스레 9.11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영화에는 9.11의 징후를 곳곳에 드러낸다. 뉴욕이라는 도시와 실시간으로 열차 내 상황을 보여주는 한 승객의 노트북 영상, 마지막 순간 애정의 말을 주고받는 모습 등은 그날의 단면이다. 영화는 '뉴욕 시민' '뉴욕은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도시' 같은 대사를 통해 사건의 무대가 뉴욕임을 강조하고 테러에 대처하는 경찰과 뉴욕 시장의 무능함을 희화화하면서 그날 이후 미국인들이 가졌던 결의와 불안을 슬쩍 내비친다. 평범한 시민에서 영웅으로 거듭나는 가버는 이런 미국인들의 의식이 반영된 캐릭터다. 하지만 <펠햄123>이 차용하는 9.11의 이미지는 거기까지다. 9.11이라는 사건의 무게보다 흥미진진한 인질극에 집중한 <펠햄123>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성찰보다 블록버스터 급 액션의 쾌감을 끌어내는 영화다.
영화의 어조는 빠른 편집으로 관객의 시선을 낚아채는 오프닝부터 드러난다. 영화는 번잡한 거리와 지하철 플랫폼을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풍경을 모자이크 해나간다. 이런 스타일리시한 영상의 주인은 다름 아닌 토니 스콧 감독. <탑 건>(1986) <트루 로맨스>(1993) <크림슨 타이드>(1995)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1998) <맨 온 파이어>(2004) <데자뷰>(2006) 등으로 액션 비주얼의 일가를 이룬 토니 스콧 감독은 <펠햄123>에서도 예의 감각적이고 현란한 영상을 선보인다. 사건의 긴박함을 시각화하기 위해 영상을 분 단위로 나눈 테크닉은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고 화려한 카 액션 신은 비주얼리스트의 기량을 재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그의 녹슬지 않은 비주얼 세공실력이 허술한 드라마의 함정까지 메웠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오래 된 원작을 불러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9.11 이후 웬만한 액션 신에 대해서는 불감증이 생긴 것일까. 영화가 라이더 일당의 범죄를 21세기에 맞춰 치밀하게 업그레이드하지 못한 탓에 이야기는 전혀 새롭지 못하고 부족한 상상력은 곳곳에 크고 작은 구멍들을 남긴다. 때문에 라이더의 숨겨진 범죄 계획도 적절한 반전효과를 누리지 못한다. 선과 악으로 대변되는 가버와 라이더의 교감을 보여줌으로써 캐릭터에 입체성을 부여하려한 감독의 시도도 단선적인 내러티브로 인해 캐릭터의 매력이 반감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설득력을 얻는다면 스콧 감독의 액션 비주얼과 더불어 두 배우의 열연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덴젤 워싱턴과 존 트라볼타의 성실한 연기는 영화가 무리수를 놓는 순간에도 팽팽한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2009년 6월 5일 금요일 | 글_하정민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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