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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은 단순한 슈퍼히어로물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2009년 3월 6일 금요일 | 박정환 객원기자 이메일


타임지가 선정한, 1923년 이후 출간된 100대 소설 중 그래픽 노블 가운데 유일하게 선정된 <왓치맨>은 휴고상 수상에 빛나는 작품이지만 장대하고 복잡한 원작의 플롯으로 인해 그간 영화화를 시도하긴 했으나 여러 차례 무산된 바 있는 실현 불가능에 가까운 영상 프로젝트였다. <300>으로 유명한 잭 스나이더에 의해 올해 첫 블록버스터의 포문을 여는 영화 <왓치맨>은 단순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다크 나이트>처럼 영화 속에서 여러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글을 통해 원작과 영화의 다른 점, 그리고 <왓치맨>을 관람 함에 있어 사전적 이해를 돕기 위한 몇 가지 사실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로 잭 스나이더 감독이 왓치맨 캐릭터들 가운데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을 가지는 캐릭터는 (그의 내한 기자회견 인터뷰를 살펴보면) 로어셰크이고 그 다음으로 애착을 가지는 캐릭터는 닥터 맨하튼이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애정을 반영해서인지 영화에선 이 두 캐릭터의 사연이 다른 4명의 캐릭터에 비해 많은 부분이 할애된다.

영화의 세계관은 원작의 시대관을 100% 반영

세상의 모든 신화들이 그렇듯이 이 영화 역시 앨런 무어가 <왓치맨>을 집필할 당시인 1986년의 세계관을 내포한다. 잭 스나이더가 처음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엔 원작과는 상이한, 요즘 세대의 세계관으로 윤색된 시나리오를 워너 브라더스로부터 부여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잭 스나이더 감독이 원작을 훼손하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원작의 세계관으로 환원하여 영화를 만들었다. 원작은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대립과 이로 인한 핵전쟁의 발발 위기와 이를 통한 세기말적 두려움을 거시적 관점에서 내포하고 있는데, 이를 워너 브라더스의 의도대로 만들었더라면 테러와의 전쟁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한 가지 특기할 점이라면 요즘의 시대사조 한 가지가 나타난다는 점인데 - 영화 후반부 시퀀스는 원작에도 나타나는 부분이지만 80년대 당시 세인들의 세기말적 공포를 영상화로 담아냄과 동시에 21세기에 이르러 미국이 겪은 9.11이라는 정신적 패닉을 확연히 투사 가능하게 만든다.

세대를 계승하는 자기정체성의 재생산

<왓치맨>의 히어로들은 여느 슈퍼히어로와는 다르게 자기정체성을 재생산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슈퍼맨이나 배트맨, 헐크나 스파이더맨과 같은 여타 슈퍼히어로들은 본인이 아니면 고유한 초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뿐더러, 만에 하나 그 히어로가 소멸하면 히어로의 활약상은 종결된다. 하나 왓치맨은 특정한 히어로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닌 집합명사이기에 세대를 뛰어넘어서도 히어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2차 대전 당시 활약하던 왓치맨 1세대는 ‘미니트맨’ (Minute Men. 1939-1949)이라는 명칭으로 활약했었고 모스맨, 1대 나이트아울, 1대 실크 스펙터, 후디드 저스티스, 달러빌, 캡틴 메트로폴리스, 실루엣, 코미디언의 8명으로 구성된다. (원작에서는 코미디언을 제외한 7명이다) 이들이 50년대 한국전 발발 이후 왜 활약을 중단했는가에 관한 영상 설명은 이들 히어로들이 결혼, 사망,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사건 등을 통해 어떻게 세인들의 관심사에서 사라져 가는가를 영화 초반부의 전사(前史)를 통해 관찰할 수 있다.

우리가 영화에서 만나는 주인공들은 2세대 왓치맨들로 나이트 아울과 실크 스펙터는 1대 히어로의 역할을 계승하는 2대 캐릭터들이다. 1-2대 실크 스펙터는 모녀지간이다. 이들 2대 캐릭터들은 오지맨디아스의 주관으로 ‘크라임 버스터즈’ (Crime Busters)라는 모임의 결성을 시도했으나 결성에 실패하는 멤버들로 (영화에서는 코미디언이 팀의 구성에 의구심을 가지고 지도를 라이터로 불태우는 시퀀스를 통해 나타난다) 코미디언과 닥터 맨하튼 이 2명은 미국 정부를 위해 일함과 동시에 실제 전쟁에선 미국이 패한 월남전을 승전으로 이끄는 주역들이다. 1세대와 2세대를 통틀어 활약하는 왓치맨은 코미디언 한 명이다. (원작에선 2세대에서만 코미디언이 활동한다) 로어셰크는 정부나 기관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방법으로 법의 심판을 받게 만들거나 악당을 처단하는, 다분히 반골(叛骨) 기질을 지닌 자경단원 역할을 해낸다. 1세대 왓치맨들이 2차 대전 이후 히어로의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더라도 2세대를 통해 히어로의 역할은 대가 끊어지지 않고 수행된다. 1대와 2대 왓치맨 멤버들 13명을 통틀어 사고로 초능력을 얻은 닥터 맨하튼을 제외하곤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 배트맨처럼, 보통 사람들이 장비나 완력으로 미국 사회에서 자경단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편하다.

슈퍼히어로라도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오지맨디아스를 제외하고 왓치맨 5명은 마음의 상처를 하나 이상 받는다. 실크 스펙터는 닥터 맨하튼이 점점 인간의 심성을 잃어가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그의 곁을 떠난다. 코미디언은 옛 숙적인 몰로치에게 과거의 과오를 고백하면서 이를 아파하고 눈물을 흘린다. 로어셰크는 어린 시절 남자들에게 몸을 팔아 살아가던 어머니에 관한 좋지 않은 기억이 트라우마로 자리 잡으며, 나이트 아울은 영화의 맨 마지막 시퀀스에서 나타나는 닥터 맨하튼의 행적으로 인해 심적 충격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날 거 같은 닥터 맨하튼이 사람들에게 상처 받아 화성으로 떠난다는 설정은 그 역시 엄연히 상처 받는 영혼의 한 사례일 뿐. 왓치맨이라는 슈퍼히어로이기 이전에 그들도 상처 받기 쉬운 사람들이었다.

코스튬을 통해서만 정체성을 확인받는 슬픈 남자

정체성의 이면으로 바라보노라면 슈퍼히어로의 코스튬을 통해서만 남성이라는 성 정체성을 구축해낼 수 있는 캐릭터인 나이트 아울이 이채롭다. 닥터 맨하튼의 연인이기도 한 2대 실크 스펙터는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 닥터 맨하튼을 떠나 나이트 아울 댄을 찾아온다. 그리고 댄에게 애정을 느끼고 소파에서 그에게 먼저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펼친다. 하지만 댄은 소파에선 그녀와 잠자리를 가지지 못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는 아이덴티티 안에서는 사랑을 더이상 진행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댄이 나이트 아울의 코스튬으로 갈아입고서는 이야기가 틀려진다. 나이트 아울이라는 히어로의 정체성을 덧입은 후에야 실크 스펙터를 안는 데에 성공한다는 시퀀스는, 댄이 평상시 한 남자의 자아로서는 여성의 애정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심한 남자지만 가면을 쓰는 슈퍼히어로의 자아가 구축될 때에는 댄의 무의식이 가면 쓴 자아를 진정한 참 자아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나이트 아울 댄을 통해 보여주는 이 시퀀스는, 초능력이 결여된 보통 사람이 가면을 쓰고 왓치맨으로 활약한다는 설정에 있어서 나이트 아울 댄의 자아주체성이 가면을 쓰건 안 쓰건 그의 자아가 항상성을 견지하는 통전성을 가지지 못하고 자기분열적 자아인식의 괴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영화의 결말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영화의 결말 부분이다. 그래픽 노블 원작의 문어는 영화에서는 설정되지 않는다. 대의(大義) 수호를 위한 인위적인 설정은 <다크 나이트>(2008)의 마지막 부분에서 배트맨이 선택하는 길과 오버랩 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한 왓치맨들의 행동은 과연 이 행동이 하마르티아에 기인한 것인지, 세계 평화라는 대의명분이라는 살얼음의 철옹성을 그나마 견지하기 위한 최선의 행동이었는지에 관해 극장 문을 빠져나가면서 성찰하게 만들 것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텔러인 로어셰크의 일기가 신문사에 제보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데 이는 남극 기지에서 있었던 일련의 일들은 왓치맨들이 함구한다고 영원히 비밀로 봉인될 일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임을 암시함과 동시에, 누가 진정한 악인이고, 누가 세계 평화라는 유토피아를 유지하기 위해 악의 대리자 역할을 맡았는지에 관한 숨겨진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임을 영상 직설화법이 아닌 은유화법으로 표현된다.

2009년 3월 6일 금요일 | 글_박정환 객원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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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k209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얼마만큼의 희생이 필요한 것일까...   
2009-03-06 22:59
hrqueen1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
논쟁게시판에서 왜 그런 글이 올라왔는 지.
그냥 그렇고 그런 영화라 생각했는데,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2009-03-0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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