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대주교를 암살하고 벨기에로 피신 온 레이(콜린 파렐)는 그의 선배 켄(브레단 글리슨)와 은신 겸 관광으로 소일하며 지낸다. 하지만 야구에서 압승을 거두는 상황에서는 도루를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인 것처럼 킬러들의 세계에도 불문율은 엄연히 존재하는 법. 대주교를 불귀의 객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레이는 주교 뒤에 있던 소년까지 숨지게 만들고, 이에 조직의 보스 해리(랄프 파인즈)는 켄에게 킬러 세계의 불문율을 어긴 레이를 죽이라는 지시를 내린다.
킬러들의 세계를 조망하지만 영화는 킬러에 몸담고 있는 이들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아니라 하나의 직업군으로 바라본다. 총을 잡지 않을 때 이들은 여느 평범한 보통 사람과 똑같은 일상을 영위하면서 관광을 즐기거나, 반한 여자에게 구애하거나, 혹은 가족을 소중히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암살 과정에서 사람들을 가려서 사살해야 하는 이 세계 나름대로의 불문율, 즉 ‘어린이는 절대 사살하지 않는다’ 와 같은 몇 가지 계율이 존재하며 이 계율은 암묵적으로 킬러들의 명예와 연관된다. 명예와 관련되어 있음은 해리의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킬러는 무자비한 존재가 아니라 엄연히 양심이 존재하는데, 이는 레이가 소년을 죽인 과오로 괴로워하고 눈물짓는 시퀀스를 통해 그의 자아가 양심에 지배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킬러들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배우들의 강렬한 눈빛 연기가 러닝타임 내내 관통함과 동시에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영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블랙코미디에 익숙하지 않다면 어느 대목에서 웃어야 할지 난감할 수도 있다.
킬러라는 직업군이 소재이기에 현란한 슈팅 액션을 기대하고 영화를 찾는다면 실패할 공산이 적지 않다. 영화는 유럽의 대도시가 아니라 북부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관광도시 브리주를 무대로 이들 킬러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영상을 통해 반영한다. 관광객을 강도 행각으로 등쳐먹는 클로이, 총을 든 살벌한 킬러들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자기주장 강한 호텔 여주인, 난쟁이 배우들은 킬러라는 주/조연 캐릭터들의 성격을 다양하게 반영함과 더불어 앞으로 전개될 사건의 복선을 제공한다.
보스 격 캐릭터인 해리는 킬러들의 불문율이라는 정해진 규칙, 룰을 굉장히 신뢰하고 추종하는 엄격한 원칙주의자다. 원칙 수호를 위해서라면 부하의 사사로운 잘못을 부하의 목숨을 통해 보상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는 인물이기에, 해리는 영국에서 벨기에로 일을 직접 처리하기 위해 날아오기까지 한다. 하나 레이의 선배 켄은 해리의 충직한 부하이지만 해리와는 다른 사고관을 가지는 인물이다. 해리의 명령이라면 복종을 원칙으로 하지만, 원칙 하나를 어겼다는 이유로 레이의 목숨과 맞바꿔야 한다는 보스의 원리엔 동의하지 못한다. 철저한 규율 신봉자이기 이전에 사람의 목숨이 우선이라는 인본주의적 사고관이 켄의 사고관을 지배함으로 그는 후배를 규율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며, 이는 앞으로 해리와의 갈등 요소로 적잖이 작용한다.
켄의 행동 양태를 통해서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덕목이 인간애라는 점을 시사하는 점은 분명 이채롭다. 사람의 몸에 바람구멍을 내는 저승사자 행보로 밥을 먹고 사는 직업에 몸담는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최우선의 덕목으로 여긴다는 점은 분명 아이러니하지만 사람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오도되기 쉬운 요즘 세상에도 우리가 수호해야 할 궁극적이자 최후의 덕목은 사람임을 환기시켜 주는 대목이기에 그렇다.
2009년 2월 24일 화요일 | 글_박정환 객원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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