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원안자가 김C라는 정보를 사전에 알았다면, 보는 동안 그렇게 심하게 몸을 뒤틀진 않았을지 모르겠다. 여주인공 ‘메구미’ 역을 맡은 이케와키 치즈루가 그 김C의 원안이 많이 수정됐단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한번쯤 더 봤을지도 모르겠다. 언론 관계자가 아닌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해서 말이다. 그러나 <오이시맨>은 맛없는 감상의 기억을 안긴 채, 머릿 속에서 그냥 지워져 갈 것 같다.
<오이시맨>은 총 6억 원 정도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홋카이도의 몬베츠에서 대부분 로케이션했지만, 사전 헌팅을 철저히 한 결과, 제작 과정에서의 누수를 줄였고, 40일 동안 총 20회차 촬영을 빡빡하게 진행한 것도, <오이시맨>의 알뜰 살림에 보탬이 됐다고 전해진다. 이런 정보조차 사실상 나중에 알았지만, 이 지루한 영화를 보면서 그나마 심상치 않게 느꼈던 건, 영상의 느낌과 스타일이었다. 그것이 놀랄 만큼 적은 제작비로 생성됐다니, 스태프들의 이름에 자연 눈이 가게 됐는데, 김정중 감독과 오승환 촬영 감독의 이력이 화려하다. 특히 김정중 감독은 국내를 거쳐 북경과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한 지성파로, 산타페국제영화제에선 단편 <Today, Mostly Sunny>가, 시네퀘스트영화제에선 장편 <Listening to the voice of a wind>가 공식초청된 바 있다. 솔직히 그게 얼마만큼 대단한 것인지에 대한 개념 자체도 별로 없는, 평범한 관객이지만, 그들을 이 영화에 모이게 한 최초의 매력이 무엇인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멋지게 담을 수 없는 ‘청춘’이 테마이기 때문이다.
웃기는 착각일까. 하지만 그런 멋진 의도로 함께 파이팅했다 정도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상상해야, 이 영화를 조금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열심히 연기하고 있다는 건 분명 알겠는데 왠지 가슴을 울리지 않는 이민기, 이케와키 치즈루, 정유미, 열심히 ‘청춘은 아프고 고독하다’고 얘기하는데, 왠지 가슴이 저미지 않는 스토리. 그렇기에 나는 다른 청춘 영화들과 동어 반복적인 얘기를 하고 있단 것을 모르는 듯 <오이시맨>이 탄생된 건, 약간이라도 다른 화법과 정서로 빚어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또, 불안정하면 불안정한대로 놔둔 채 배우들의 연기를 더 자연스럽게 다듬지 않은 건, 그 어색함 자체가 의미를 가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게 그들이 생각하는 ‘청춘 이야기’ 라고 믿고 만들었다면, 넉넉한 마음이 되고 싶다는 거다. 그런 노력이 엿보이는 설정이나 장면이 없진 않으며, 적어도 한국 남자 배우와 일본 여자 배우의 조합으로 <첫눈>처럼 단순한 로맨스를 만들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녀의 관계를 넘어서 좀더 여운있는 유대 관계를 그린 <오이시맨>에 그 의도만큼 끌리지 않는 건, 관객보다 몇 박자쯤 먼저 힘들어 하는 인물들 때문이다. 그 고통이 진정한 고통인지 아닌지, 내 것과 닮았는지 아닌지 판단하기도 전에, 우울한 제스처부터 취하는 인물들에게선, 살짝 ‘겉멋’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겉멋’ 조차 영화적으론 멋있다고 생각했던 청춘은 지난 나이이다 보니, <오이시맨>은 어딘가 불편한 영화가 돼버렸다(사실, 홋카이도 같은 멋진 곳에 갈 돈이라도 있는 청춘이라면, 아주 비참한 것은 아니지 않나??). ‘진짜 괴로워하는 청춘은 그런 모습이 아니네!’ 투의 정서적 불만족을 강조하며, 이 영화에 손을 들지 않는 것이 별로 탐탁친 않지만, <오이시맨>에 대해선 어쩐지 그렇게 되고 만다. 아무리 이 영화가 ‘그래도 (아픔의) 시간은 흘러간다’ 식의 격언을 신선하게 상기시켜 준다고 해도 말이다. 그건, 청춘영화가 피할 수 없는 냉정한 도마질 아닐까.
2009년 2월 18일 수요일 | 글_S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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