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시인 황동규가 “둘이서 떠나면 이미 여행이 아니다”라고 말했듯이 모름지기 여행이란 홀로 길 떠나야 제 맛인 법이다. 여행이란 먼저 다녀간 이들의 추억이 아로새겨진 낯선 벽지 아래 다른 사람이 누웠던 자리에 몸을 포개는 것이고, 혼자일 때 그 감흥은 배가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 풍경이 불러오는 묘한 느낌은 홀로 떠난 여행이 아니고서도 도저히 맛보기 힘든 것들일 터. 사내들이 터미널이나 기차역 또는 여행지에서 조우하는 묘령의 여인과의 분 냄새 야릇한 로맨스도 꿈꿔 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홍상수의 남자들이 강릉과 경주를 찍고 부천과 신두리 바닷가를 거쳐 급기야 파리에 이르기까지 발 닿는 곳마다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닐 수 있었던 것도 혼자 하는 여행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소주대신 와인으로 도구가 바뀌었을 뿐 <사이드웨이>에서 결혼을 앞둔 퇴물배우의 목적 역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것 아니었던가.
여행을 빙자한 이러한 속물근성의 발현은 비단 영화 속 인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명인사의 자서전마다 젊은 시절 혹은 만년의 여행길에서 알게 된 이국적인 처녀와의 낭만적 로맨스가 감초처럼 담겨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여행이 만들어낸 추억이란 언제나 로맨스를 동반하기 마련인가보다. 한편 애틋한 로맨스 뒤에 감춰진 말 못할 사연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한 순간이나마 꿈같은 로맨스를 일군 여행자들의 수첩 뒷장마다 타지에서 온 사내에게 마음을 빼앗긴 마을처녀를 보호하려는 동네남자들의 탐욕과 질투가 얼룩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1980년대의 어느 겨울, 혼자서 정선 땅을 여행했던 기억이 난다. 애초에 목적은 가리왕산을 오르는 것이었는데, 밤새 내린 폭설 때문에 발이 묶여 정선터미널 인근 여관에서 묵고는 정선을 한 바퀴 돌아보고 주문진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정선에서 주문진으로 가는 방법은 완행버스 밖에는 없었다. 승용차 한 대도 지나가기 힘들 정도의 눈 덮인 산판도로를 곡예 하듯 달리는 완행버스에서 바라본 강원도의 산속 풍경은 아름답기보다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이러한 두려움은 주문진 터미널에 내린 후 포구를 거쳐 서울행 표를 사기까지 지속되었다. 아마도 아는 이 하나 없이 타관에 선 자의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이지 그 때만 해도 지방에는 텃세라는 게 엄연하게 존재했고 특히나 타지에서 온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는 눈초리가 남달랐던 시절이다. 탈 없이 여행을 끝내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닌 일인 데, 언감생심 로맨스가 가당키나 한 말인가. 촌로가 옆에 앉아 말이라도 붙여올라치면 손사래 치고 부리나케 자리를 뜨기 일쑤인 성격인지라 누구처럼 타지에서 만난 현지인과 주거니 받거니 술판을 벌이는 일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20여 년 전 강원도 여행의 기억을 들춰낸 까닭은 지난 주말에 보게 된 <낮술>의 주인공 혁진에게서 나와 비슷한 구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보다 술을 몇 십 배 잘 마신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얼핏 보면 변죽도 좋아 보이는데다가 옆방 여자와의 로맨스에 목을 맨 속물근성 가득한 사내처럼 보이지만, 사실 옷과 지갑을 잃은 후부터 그를 지배하는 것은 낯선 곳과 낯선 이들에 대한 불안감이다. 로맨스에의 기대감은 박살난 지 예전이고 무사귀경이 당면과제가 된 남자가 낯선 땅에서 믿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으랴. 때문에 쪼그려 앉은 처량한 나그네에 앞에 친구의 승용차가 당도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젠장, 난 정말 혁진 앞에 도착한 차가 그 이상한 벌목운반용 화물차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천신만고 끝에 다시 찾은 정선터미널에서 혁진은 또 다시 망할 놈의 속물근성이 스멀거리며 기어 나오는 것을 추체하지 못한다. 관객의 웃음이 터지는 엔딩에서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외친 말, “너도 강릉으로 간다고 해. 인생 뭐 있어? 달콤한 추억 하나면 그만인 걸” 그래, 아마도 혁진은 강릉으로 갔을 것이다. 또 다시 몹쓸 일을 당해도 좋다고 생각했을 테고 그게 남자의 본성이니 누가 욕할 텐가. 그런데, 한 가지는 알아두시라. 평생 가슴에 묻어놓을 만한 로맨스는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을. 스펜서 트레이시라서 캐서린 헵번의 가슴 속에 평생 남을 수 있었던 것이고, 셰인 정도의 멋진 총잡이라야 결혼한 여인의 마음마저 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낯선 곳에서의 야릇한 로맨스? 컵라면에 낮술이나 한 잔 들이키고 얼른 현실로 돌아오셔!
2009년 2월 13일 금요일 | 글_백건영 편집위원(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