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촬영이 모두 무사히 끝났다.
부족한 초보 감독을 만나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개런티도 없이 일했던 스태프들.
그들이 없었으면 소소만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스태프들은 영화의 보배들이다.
소소만 뿐 아니라 모든 영화가 다 그렇다.
황정민씨 말처럼 배우와 감독이 숟가락을 올려놓을 수 있게 상을 차리는 그들이 바로 영화를 받치고 있는 버팀목이다. 모든 영화의 스태프들에게 박수를. 짝짝짝.
촬영을 마치면서 바로 편집 작업에 돌입했다.
편집에 걸리는 시간은 영화마다 다르다.
단편이라서 짧게 걸릴 것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
감독이 욕심이 많으면 편집 시간도 길어진다.
상업영화의 경우에는 대부분 개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편집 시간도 미리 계획이 되어 있지만 단편의 경우엔 그렇지가 않아서 마음에 안 들면 또 고치고 또 고치고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소소만은 처음부터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편집 시간도 미리 정해져 있었다.
2개월.
짧은 단편 치고는 긴 시간이었지만 막상 작업에 착수하고 보니 그리 길지도 않았다.
편집 에피소드 1.
5월 초 어느 날이었다.
촬영된 그림을 콘티 순서대로 붙여 놓은 편집본(순서 편집본이라고 부른다)을 보기 위해 편집실에 갔다.
편집 기사가 “촬영이 잘 돼서 커트도 비지 않고 좋다”고 미리 귀띔을 했던 터라 룰루랄라 콧노래를 불렀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그런데 웬걸.
편집된 그림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몇 장면은 NG가 붙어 있기까지...
왜 NG를 붙여 놓았느냐며 편집 기사를 닦달했다.
편집 기사는 OK컷만 붙여 놓았다고 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저 말도 안 되는 그림들이 OK일리가 없었다.
“당신 눈에는 저게 OK로 보이나?”
말이 되지를 않았다.
OK컷을 찾아라!
컴퓨터에 저장된 모든 컷들과 스크립 노트를 비교해 가며 OK컷을 찾았다.
아뿔싸.
편집 기사의 말대로 그게 다 OK였다.
말도 안 되는 NG들이 전부 다.
눈앞이 깜깜했다.
촬영 현장에서 분명히 “OK!”라고 외쳤던 컷들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 OK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눈앞에는 NG들만 수두룩했다.
아, 이게 초보 감독의 한계인가 보다.
또 좌절의 늪에 빠졌다. ㅠ.ㅠ
편집 에피소드 2.
제대로 찍히지 않은 장면들은 모두 걷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 걸 찍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쳐다봐도 NG인 걸 어떡하나.
살을 도려내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자식 같은 컷들을 자를 땐 마음이 정말 아팠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에잇.
과감하게 자르고 나니 다른 문제가 또 생겼다.
중간 중간에 비어 버린 컷들을 붙여 놓았더니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이론, 이 걸 어쩐다냐.
하지만 이게 편집의 묘미 아니던가?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것.
이렇게 저렇게 시나리오와는 다른 연결을 해본다.
영화가 약간 달라지면서 새로운 맛이 보인다.
편집, 정말 재밌다.
순서대로 쭈욱 붙였을 때는 못 봐주겠던 영화가 점점 꼴을 갖춰간다.
어떤 장면은 내가 봐도 좋았다.
아, 이렇게 즐거운 날도 있구나.
점점 자뻑 모드로 돌입하면서 좌절의 늪에서 나를 건져 올린다.
20분 분량의 영화가 편집을 마치고 나니 13분이 되었다.
무려 7분을 잘라내었다.
그렇게 완성된 최종 편집본을 여러 사람에게 모니터했다.
타겟이라고 생각한 10대 말~20대 초반의 여성들부터 소소만을 제작한 친구사이 회원들까지.
돌아 온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예상 보다 좋은 반응에 그동안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편집을 마친 소소만은 애니메이션과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더한 다음 음악과 사운드 믹싱을 거쳐 완성되었다.
시나리오부터 완성까지 걸린 시간은 총 11개월 15일.
거의 1년 동안 작업한 셈이다.
그 기간 동안 256명의 소년단들이 제작비를 모아 주었고
66명의 스태프들이 땀을 흘렸고
7명의 연기자가 열연을 펼쳤고
60명의 10대 자문단이 자문을 해주었고
45명의 보조 출연자가 도와주었다.
잊을 수 없는 일도 많았다.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공식 초청되어 예매가 시작된 지 2분 만에 매진되었던 일.
첫 상영 후에 나를 둘러싸고 싸인 공세를 펼치던 수십 명의 영화팬들.
개봉 뒤에 극장을 가득 메워 매진을 기록해 주었던 관객들.
그분들 덕분에 소소만은
단편으로는 이례적으로 극장에서 단독 개봉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제 오늘로 개봉 12일째.
전국 8개 스크린에서 하루에 1~2회 정도 상영되고 있는 소소만의 누적 관객 수가 2,700 명을 넘어 섰다.
천만 관객을 넘는 영화가 나오는 현실에서 2,700명의 관객 수는 정말 미미하다 못해 초라한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단편일 경우엔 달라진다.
한국영화사에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단편 하나를 달랑 걸어 놓고 관객들을 맞는 일도 없었고
그 영화가 수천 명의 관객을 모으는 일도 없었다.
없던 일을 만드는 건 두려운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또 즐거운 것이기도 하다.
두렵고 즐거운 소소만의 행진은 오늘도 계속된다.
그 행진에 동참하실래요?
* 오늘을 끝으로 연출일기를 마칩니다.
그동안 보잘 것 없는 초보 감독의 미천한 연출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좋은 영화를 만들어 또 찾아뵙겠습니다.
김조광수 드림.
꾸벅.
글_김조광수 감독(청년필름 대표) 광수닷컴 놀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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