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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아, 이 건 순도 100% 게이영화야! 뼈 속까지 게이인 김조광수의 연출 데뷔작이라구!
2008년 11월 25일 화요일 | 김조광수 감독 이메일


오늘은 촬영 두 번째.
지난번 촬영은 프래시 백, 과거 장면이었고 오늘은 바야흐로 현재 장면을 찍는 날이다.
오늘은 촬영이 더 어렵다.
민수(김혜성 분)의 미묘한 감정을 잡아내야 하는 것도 그렇고
예지원양의 큐피드 장면도 내게는 난관이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오늘 소화해야 하는 컷은 무려 30컷.
해 떨어지기 전에 모두 마무리해야하는데,
초보 감독인 나로서는 부담될 수밖에 없는 분량이다.
하지만 어쩌랴.

심기일전.
배에 힘 빡 주고 출발이다.


버스에서 먼저 내린 민수는 석이(이현진 분)가 자기를 따라 내렸다고 생각하고 앞서 걷지만 뒤를 돌아 확인하지는 않는다.
보고 싶지만 보면 안 된다.
첫 번째 연출일기에서도 밝혔듯 게이들은 이성애자와는 달리 필이 꽂힌 상대방이 있더라도 바로 자신의 감정을 밝히면 안 된다.
상대는 내게 아무런 감정이 없을 수도 있고 재수 없으면 호모포비아일 수도 있다.
그냥 무조건,
때가 됐다 싶을 때까지 살피고 또 살필 수밖에 없다.

민수가 걷는 장면을 스테디캠으로 따라가며 길게 찍기로 했다.
편집에서 어떻게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은 민수의 감정 그대로 물리적으로 길게 찍어 보자고 했다.
리허설을 하려는데 김명준 촬영감독이 갑자기 엉뚱한 제안을 한다.

"형(그는 나의 대학 6년 후배다), 이 영화는 독립영화이고 퀴어영화인데 스테디캠 쓰는 건 너무 럭셔리 아니야? 내 생각에는 말야...“

김명준 촬영감독은 스테디캠을 쓰지 말고 그냥 60프레임 고속촬영(보통의 영화는 1초에 24개의 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있다)을 한 다음에 24프레임 정속으로 만들어 보자고 했다.
그렇게 하면 스테디캠 만큼은 아니지만 흔들림이 적기 때문에 관객들이 보기에 불편하지는 않을 것 같고 스테디캠을 사용했을 때처럼 너무 부드럽지도 않아서 독립영화적인 느낌이 잘 살수도 있다고 했다.
오, 솔깃한 얘기다.
상업영화 제작자가 감독으로 데뷔한 영화이기 때문에 너무 때깔이 버터 두른 듯해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터라 일단은 그렇게 찍어 보자고 했다.
그런데 웬걸 여기서는 확인이 안 된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고 찍은 다음에 편집실에서나 확인할 수 있단다.
헉, 뭐야? 그럼 그냥 믿고 따라오라는 얘기?

잠깐의 갈등.

초침 소리 과장 되게 들리는 그 몇 분 동안 난 생각에 잠겼다.
배우와 스태프 모두 정지된 사람들처럼 나만 쳐다본다.
어, 빨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좋은 제안이긴 한데, 지금은 확인이 안 되고.
그럼 나중에 편집실에서 ‘이 건 아니다’ 싶으면 그 때는 어떡해?
그냥 촬영 감독을 믿고 맡겨 봐?
에이, 나도 못 믿는 판국에?
사람들의 눈총이 따가워진다.
마른 침이 꿀꺽.
머리가 하얘진다.
그때 촬영 감독이 다가와서 귓속말을 건넨다.

그리고 내가 외쳤다.
“OK!”
촬영 감독이 뭐라고 했느냐고?
나도 모른다.
기억이 없다.
그 순간에도 그랬던 것 같다.
촬영 감독의 이야기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뭔가 계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대한 계기.

다시 촬영에 들어간다.

“혜성아, 일단 니 마음 가는대로 해보자.”
“네.”


조감독이 슈팅을 외친다.
자, 레디, 사운드, 카메라, 액션!
카메라를 어깨에 멘 촬영 감독이 앞서고 그 앞에 민수로 분한 혜성이가 걷는다.
이른바 핸드 헬드.
촬영 감독은 계속 뒷걸음질을 해야 한다.
그 옆에 촬영부들이 촬영 감독을 보좌해서 따라간다.
촬영 퍼스트는 포커스를 맞추기 바쁘고 다른 촬영부들은 카메라 연결선을 붙잡고 촬영 감독이 뒷걸음질 칠 때 넘어지지 않게 잡아 준다.
쉽지가 않다.
하지만, 힘들겠지만 최대한 길게 찍어 보았다.
내가 “컷!”을 불러야 촬영을 멈추는데 난 그냥 최대한 길게 민수를 보고만 있었다.
한 5분쯤 지났을까?
그때서야 “컷”을 불렀다.
모두들 힘든 눈치다.
촬영 감독이 제일 힘들 테지만 베테랑이라서 그런지 내색하지 않는다.
모두 모니터 앞으로 다가온다.
길고 긴 침묵의 시간.
혜성이가 잔뜩 긴장한 얼굴이다.
모니터가 끝나고 다들 또 내 얼굴을 쳐다본다.

“MG!”

혜성군을 불렀다.

“혜성아, 이성애자 같아.”
“네?”
“니 표정이 이성애자 같다구.”


혜성군은 큰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본다.
뭔 말이냐면.
민수는 이성애자 여자가 아니다.
민수는 게이.
게이들이 길에서 맘에 드는 상대를 헌팅할 때의 감정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큐피드 화살에 맞은 양 첫눈에 확 끌린 넘이 날 따라온다.
천천히 걷고 있는데도 나를 앞지르지 않고 따라온다.
어쭈, 날 따라온다 이거지? 일단 확률은 50% 이상.
그래? 그렇다면 이렇게 해봐?
속도를 조절한다.
조금 빠르게 걷다가 또 느리게...
내 속도에 그 넘이 맞추면 확률은 거의 100%.

그때의 초조함과 설렘 그리고 내 속도에 맞출 때의 환호 같은 걸 이야기 한다.
혜성군이 진짜 민수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혹시나 혜성이가 “난 여자.”라고 마음먹거나 현진군을 여자로 생각하고 연기하는 순간 이 영화는 그저 그런 영화가 돼 버린다.

혜성아, 이 건 순도 100% 게이영화야.
뼈 속까지 게이인 김조광수의 연출 데뷔작이라구.


이성애자인 혜성군은 처음에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럴 땐 대화가 필요해.
시간은 자꾸 간다.
마음은 바쁘지만 혜성이가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혜성군은 민수가 되어 간다.
그리고 다시 레디, 액션!
이제 민수가 다 된 헤성군은 NG없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 주었다.

“OK!”

촬영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혜성군의 감정이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민수를 여자라고 생각하거나 석이를 여자라고 생각하면 이 영화는 낭패를 본다.
오히려 현진군은 혜성군을 여자라고 생각하고 연기해도 상관없다.
석이는 민수를 만나 끌리게 되는 인물이다.
자기를 동성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냥 민수에게 끌리는.
아직 동성애에 대한 감정을 잘 모르는 석이에 반해 민수는 스스로를 게이라고 생각하는 인물.
그렇기 때문에 혜성군의 감정은 이성애자의 감정이 아니길 바랐다.
촬영하면서 혜성군이 많이 힘든 건 당연했다.
물론 현진군도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아직 반도 못 찍었는데 말이다.
헉, 빨리 밥을 먹고 서둘러 본다.
이쿠.
아니지 아니야.
내가 서두르면 스태프들은 조금도 쉬지를 못한다.
담배도 끊은 난 할 일이 없다.
그냥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촬영을 준비하는 편이 낫겠다.
그래 산책을 하자.

지원양이 탄 차가 나타났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장면.
은발 가발에 희 깃털 드레스를 입은 큐피드 예지원.
역시 어울린다, 어울려.^^*
즉석에서 안무를 짜본다.
고등학교 때 무용을 전공한 지원양은 즉석 안무도 훌륭하게 해낸다.
이렇게 저렇게 짜낸 안무에 스태프들은 웃음바다.
느낌이 온다.
이 장면은 극장에서 보면 대박이다. ㅋㅋ(내 예상처럼 극장에서도 웃음바다가 되었다)
열심히 춤을 춘 지원양에게 박수를 보낸다.

“OK! 지원 잘 했어. 이렇게 똑같이 두 번만 더 찍자!”

편집에서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많이 찍어 놔야 한다.
배우도 스태프도 모두 힘들겠지만 더 찍어야 한다.
이럴 때 감독이 마음 약해지면 꽝이다.
스태프를 아예 못 본 척하는 게 낫다.
하지만 감독의 마음도 아프다.
아, 아파. ㅠ.ㅠ
그렇게 두 번을 더 찍고 내가 또 외쳤다.

“OK! 두 번만 더!”

다음에 계속... to be continue...

글_김조광수 감독(청년필름 대표) 광수닷컴 놀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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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eunsung718
궁금한영화네요   
2010-09-07 11:30
kisemo
잘봤어요~   
2010-04-22 17:57
podosodaz
끌리진 않지만 어떤 영화인지는 궁금하네요..   
2008-11-28 21:55
east2ar
난 쫌.. 거부감이 드는데 왠지 게이라는거...   
2008-11-28 11:32
kwyok11
순도 100% 게이영화?   
2008-11-27 08:19
justjpk
호기심을.. 자극...   
2008-11-26 02:10
ehgmlrj
어떨지..;;   
2008-11-2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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