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황당한 저주>, <뜨거운 녀석들>로 한국 관객들에게 인지도가 높아진 사이먼 페그가 이번에는 미국 최고의 연예잡지 샵스에서 성공가도를 꿈꾸는 런던 출신 기자로 올가을 한국 극장가를 노크한다. 더군다나 커스틴 던스트와 메간 폭스, 질리안 앤더슨과 제프 브리지스라는, 배우 이름만 들어도 익히 알 법한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면서 말이다. 이런 흥미진진한 톱스타 캐스팅이 시의적절한 풍자 및 위트를 겸비한 연출, 토비 영의 자전적 이야기를 토대로 한 각본이라는 삼박자와 맞아 떨어졌다면 감칠맛 나는 로맨틱 코미디로 어필할 수 있었겠지만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사이먼 페그의 연기 내공만 갉아먹는 영화로 전락하고 만다.
주인공 시드니(사이먼 페그)가 벌이는 엽기에 가까운 갖가지 해프닝들은 그가 괴짜임을 증명하기 위해 보여지는 장치들이다. 허나 시드니라는 캐릭터가 관객들에게 웃음을 제공하려는 과잉 연출 의지가 돋보여서인지 “본능에 충실해”라는 개그 대사가 절로 떠올려진다. 워낙 언행이 유별나기에 모든 직장동료들이 그를 기피하는 요주의 인물로 전락하지만 알고보면 순수한 면도 있는 남자이기에 앨리슨(커스틴 던스트)이 유일한 친구로 그의 주변에 남았는지도.
연출적 비약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영화의 첫 장면을 통해 시드니가 연예잡지계에서 성공한다는 사실은 관객들이 미리 알 수 있었지만 샵스에 입사 후 4개월 동안 단 175 단어만 샵스 잡지에 기고할 수 있던, 퇴출 일보직전이라는 빨간불이 켜진 그가 종영 전 15분 동안 눈부신 활약만으로 성공한 연예 저널리스트로서의 명성이 수직상승한다는 연출은 노력의 결실이 점차 쌓여나감으로 입지적 전기를 마련한다고 보여지기보다는 시드니라는 귀인을 위해 뉴욕 연예계가 돌아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더군다나 시드니가 손에 끼고 있는 반지가 그렇게 소중한 의미를 지녔다면 애시당초 소피에게 주질 말았어야지 영화 종반부에 이 무슨 추태만상인가?
물론 이 영화에도 긍정적 요소는 존재한다. 스타의 이미지는 연기나 노래실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발군의 이미지 메이킹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뉴욕 연예계의 풍자도 엿볼 수도 있으며 상투적이나마 로맨틱 코미디의 궤율을 충실히 이행코자 노력한 흔적도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또한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게 만드는 웃음 바이러스는 영화 곳곳에 내포된다. 웃음을 자아내는 시드니의 연기가 과장을 배제하고 영화 요소요소 적절한 위치에 재배열 되었더라면 관객의 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풍자는 뼈대만 앙상하게 남고 과장은 사이먼 페그의 재능을 씹어먹고 만 슬픈 딕릿(Dick-Lit)의 한계를.
딕릿이란?
여성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영미소설을 '칙릿'이라고 한다면, 이와 대조적으로 남성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을 '딕릿'이라고 한다.
2008년 10월 14일 화요일 | 글_박정환 객원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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