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합니다>는 지리멸렬한 삶을 다루고 있다. 정신질환 환자들을 치료하는 요양원을 배경으로 한 <나는 행복합니다>는 환자로 입원한 만수(현빈)와 정신병동의 간호사로 재직 중인 수간호사 수경(이보영)의 사연을 평행처럼 진행시키는데 두 인물은 각자 미쳤거나 미쳐가기 직전의 상태에 몰려있다. 두 인물의 삶은 대칭을 이루듯 펼쳐지는데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노모를 모시는 만수와 암투병중인 노부를 모시는 수경의 삶은 경제적 난국과 그로 인한 연애의 파국을 경험한다는 측면까지 비슷한 양상으로 펼쳐진다.
지난한 삶을 거쳐 과대망상증이란 정신질환자로 규정된 수만과 달리 미쳐버리기 직전에 몰렸을 뿐, 아직 질환자로 판명되지 않은 수경은 정상인이다. 결국 상황 이후의 수만을 상황 이전의 수경이 목격하고 관찰하게 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동병상련은 서로를 보좌한다. 각자가 상대의 처지를 바라보는 관점은 정상과 비정상의 차별된 의식 세계로 구별되지만 본질적으로 비슷한 통증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연민을 자아낸다. 영화는 고단한 수경의 현실을 그만큼이나 고단했던 수만의 과거와 종종 대칭 시키는 동시에 수만의 현실과 대비시키는데 그것은 수경의 비극적 현실의 무게감을 측정하는 방식임과 동시에 수경으로 하여금 어떤 예정될 것만 같은 미래를 경계하게 만든다. 수만의 현실과 과거를 순차적으로 진전시키는 과정 속에서 수경의 현실이 미묘하게 맞물려 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어떤 연대를 모색하거나 노골적인 교감을 묘사하지 않는다. 단지 두 사람은 적절히 동떨어진 위치에서 상대를 관찰하거나 적절한 거리감만큼 서로를 탐색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어떤 낙관을 배제한 이 영화의 엔딩은 지속될 비극의 굴레에서 크게 멀어지지 않는 방식으로 어떤 희망을 자아낸다. 이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어떤 희망을 모색할 수 있다’는 윤종찬 감독의 주관이 개입한 측면이기도 하거니와 그 결과물의 주제 양식이 그것을 적절하게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어떤 이들의 비극적 현실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허구지만 그것이 바탕으로 두른 세계관은 결코 이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큰 비극을 예감하게 한다. 종이에 써 갈긴 만수의 수표는 형태적으로 우리가 탐닉하는 지폐와 별다를 바 없다. 비정상인에게 수표로 통용되는 것이 정상인의 눈엔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그것은 우리로부터 통용되는 돈의 가치, 더 나아가서는 재화의 가치 그 자체에 대한 역설과도 같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행복합니다>는 어쩌면 현실에서 통용되는 인간의 가치를 적나라하게 제시하는 역설적 리얼리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끝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처럼 생존 그 자체를 희망이라 붙드는 영화는 역설적인 제목처럼 애처롭기 짝이 없지만 한편으론 잴 수 없는 인간적 의지의 표상 같아서 겸허해질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축제의 마지막 날, 그 지리멸렬한 비극을 대면해야 하는 어떤 관객들의 상황도 역설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그것이 이 시대에서 점차 간과될 수 없는 어떤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행복합니다>는 희망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 이는 축제를 위한 특별한 마침표가 될만한 것이기도 하다.
2008년 10월 10일 금요일 | 부산_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