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를 겪지 않은 이들은 그 시대를 과연 어떻게 상상할까? 통금과 지금보다도 더 짧았던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경제성장의 구호. 그러기 위해 희생됐을지 모르는 젊은 청춘들의 혈기. 구속과 억압 안에서 꽃 피웠던 저항 문화. 아마도 이런 것들을 생각할 것이다.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고, 미치도록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금지해야 했던 것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소울에 충만했던 피 끓는 청춘들은 금지의 눈을 피하고, 빈틈을 활용하며, 젊음의 질주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열기를 열정이 숨 쉬는 고고 문화 안에 담아 해소했던, 그런 경쾌한 젊음을 비추는 영화가 <고고 70>이다.
<고고 70>은 70년대 대구 왜관의 기지촌 클럽을 비추며 시작한다. 맞지 않는 카우보이모자처럼 어울리지 않는 음악을 걸치고 재미없는 연주를 하는 상규(조승우)와 뭔가 다른 느낌으로 기타 줄을 튕기는 만식(차승우). 그들은 왠지 모르게 비슷한 소울의 정신에 끌려 의기투합하고 데블스라는 6인조 밴드를 결성한다. 그리고 변두리 연주에 자신의 우상이 머무는 것을 참지 못한 미미(신민아)의 제안으로 서울로 상경한다. 이곳에서 그들은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뜻하지 않게 당대최고의 음악전문가 이병욱(이성민)의 눈에 띄게 되고 한국 최고의 고고클럽 ‘닐바나’의 무대에 서는 행운을 거머쥔다. 이때부터 데블스는 “한국 최초의 소울 브라더스”라고 명명되어지며, 통금이라는 시대의 구속으로 모든 열정이 금지된 밤 젊은이들의 열정을 음악으로 깨운다. 그리고 청춘을 미치게 하는 그들의 에너지를 통해 최고의 인기 밴드로 거침없이 질주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청춘을 억압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구속으로 가득찬 시대의 암울함이 아닌 음악을 통한 젊음의 열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풍경의 경쾌함은 데블스의 공연장면을 통해서 찬란하게 스크린에 뿌려진다. 사실 <고고 70>은 탄탄한 드라마적 구성이나 인물간의 음악을 둘러싼 디테일한 감정 연기. 혹은 알콩달콩 가슴에 쟁쟁거리는 로맨스가 심도 있게 드러나 있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그러한 이야기의 투박스러움을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공연장면으로 세밀하게 풀어 놓는다. 이미 뮤지컬과 영화에서 노래 실력을 검증받은 조승우와 홍대씬에서 명성을 쌓은 차승우의 어색한 조우는 뜻밖의 발랄한 시너지를 일으키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들의 음악 안으로 몰입하게 한다. 그리고 시대를 내다보고 트렌드를 읽는 안목을 가졌던 70년대의 이효리스런 신민아의 현란한 춤사위와 몇 겹 걸치지 않은 댄스홀 패션은 왁자지껄한 음악과 함께 추가 증정의 기쁨을 선사 한다.
영화 전반을 아우를 때 영화의 주제는 소울이다. 영혼, 혹은 정신. 영화 속 그들은 음악에 자신의 영혼을 불어 넣고 음악으로 스스로의 정신을 컨트롤한다. 때론 겁 없는 질주가 이탈의 길로 변모하기도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조차 그들을 가장 힘겹게 하는 건 음악이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 가게 하는 것도 음악이다. 결국 음악과 소울은 하나가 되어 그들의 품에 안긴다. 구태여 사랑에 질질 짜지 않아도, 입영통지서를 무시한 채 경찰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녀야 하는 짜증지대로 나는 인생이어도 그들이 안타깝다거나 찌질해 보이지 않는 건, 그들이 온 몸으로 부딪혀 연주했던 음악의 빛이 고스란히 영화 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청춘의 열기가 달콤한 땀이 되어 흐르는 순간, 함께 리듬을 타고 박자를 맞추는, 어느 시대나 똑같은 젊음의 에너지가 곳곳에 충만하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23일 화요일 | 글_김선영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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