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패는 공갈과 납치, 심지어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깡패다. 그는 종종 홀로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다. 그가 보는 영화 속에는 칼부림하는 깡패들의 액션이 멋있기만 하고, 심지어 칼에 맞아 죽어가는 주인공의 모습마저도 어딘가 숭고하다. 어느 날, 강패가 관리하는 단란주점에 신작 영화를 찍는 감독과 배우들이 찾아온다. 그 중 유명 영화배우인 수타의 팬이라는 강패는 우여곡절 끝에 수타에게 싸인을 받지만 수타는 강패에게 쓰레기처럼 산다며 빈정거린다. 하지만 곧 수타는 강패를 통해 자신의 연기적 허세와 다른 진짜 기세를 느끼게 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인연이 얽혀 들어가는 그 지점에서 영화는 고조된다.
영화 속에서 깡패를 연기하는 수타는 강패를 한낱 쓰레기 취급하지만 현실에서 진짜 깡패인 강패는 수타에게 흉내조차 잘 못내는 주제에 주인공 행세하는 건 운이 좋은 것일 뿐이라며 받아친다. 서로의 반대편에서 상대에게 조소를 보내는 두 남자는 아이러니하게 점차 상대의 영역을 동경한다. 수타와 강패의 동선이 교차를 거듭할수록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지고 종종 상대의 경계를 침범하기 시작한다. 수타에게 강패의 언어는 실제로 도달하고 싶은 실존의 대화고, 강패에게 수타의 언어는 언젠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대사다. 강패가 현실에서 내뱉은 문장을 대사처럼 따라 하는 수타와 수타가 읊은 대사를 현실의 대화에 삽입하는 강패는 서로를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불분명한 진창으로 끌어들인다. 강패와 수타의 비극은 각각 그 경계를 넘으려는 찰나에서 발생한다.
‘진짜 싸우는 거라면 하겠다’는 강패와 ‘영화란 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수타는 엄연히 다른 세계의 구성원이지만 두 사람은 거울의 구도로 서로를 비추는 닮음의 형태와 같다. 가짜와 진짜로서 영화와 현실에서 빛과 어둠처럼 존재하던 두 사람의 육체가 하나의 영역에서 뒤엉킬 때 <영화는 영화다>는 강렬하게 진동한다. 상대방에게 품은 애증을 격발하듯 상대에게 내뻗는 주먹과 발길질은 반대편의 영역을 향해 옮겨진 한발처럼 서로를 잡아당긴다. 반복되는 테이크 안에서 카메라를 노려보는 강패는 현실을 지워나가기 시작하고, 강패를 비아냥거리던 수타는 현실적 주먹에 얻어맞으며 영화적 한계를 체감한다. 점차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서로를 마주보고 빙글빙글 돌던 두 남자가 자리를 맞바꾸듯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고 서로에게 동화되기 시작한다.
<영화는 영화다>는 철없던 어른아이의 거친 성장기이자 고독한 아웃사이더의 덧없는 호접몽이다. 영화 속 가상에 도취돼 세상을 만만히 내려보던 수타는 현실의 주먹에 얻어맞은 뒤에야 자신의 현실을 둘러보기 시작하고 카메라 앞에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던 강패는 자신이 서 있는 현실을 더욱 절감한다. 결국 영화와 현실은 서로를 침범하지만 그 경계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종래에 뻘밭에서 이전투구를 벌이는 두 남자의 얼굴은 진흙이 잔뜩 묻어 누가 누군지 분간이 안될 지경이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분간하지 못하는 건 수타나 강패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국 그건 결국 영화고, 주인공은 끝내 일어선다. 현실에 짓눌려서는 안 되는 것이 영화라면 영화의 망상을 경계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결말에 다다라 피칠갑을 하고 수타를 바라보는 강패의 날카로운 눈은 궁극적으로 어딜 향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마치 객석을 응시하듯 교묘하다. 만약 어떤 관객이라도 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강패로부터 매력을 느낀다면 결국 엔딩이 밀어내는 객석과 스크린의 거리감을 외면해선 안 된다. <영화는 영화다>는 결국 자신의 영화적 육체를 통해 영화와 현실의 경계에 마주본 관객을 도발한다. 네 눈이 카메라야, 잘 찍어. 극 말미에 강패가 수타를 향해 던지는 이 ‘대사’는 수타를 매개로 영화 그 자체에 던지는 선언이다. 현실과 영화는 대립적이면서도 상호적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현실이고, 영화는 영화다. <영화는 영화다>는 결코 일치할 수 없는 현실과 영화의 경계에 대한 애증 어린 시선을 도발적으로 선사한다.
2008년 9월 11일 목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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