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쓰 프루프>의 짝패답게 <플래닛 테러>는 적나라한 싸구려 유희를 있는 힘껏 발산한다. 다만 페달을 밟듯 체감속도를 높여나가는 <데쓰 프루프>와 달리 <플래닛 테러>는 부지런히 스텝을 밟는 움직임으로 스태미나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상황에 대한 논리적 유추를 조롱하듯 <플래닛 테러>는 그저 기저에 깔린 상황들을 두서없이 풀어놓고 마냥 떠들어댄다. 사건이 형성될 뿐, 그것이 어떤 원인에서 비롯됐으며 어떤 근거로 진행돼나가는가라는 상세한 논리 따위는 안중에 없다. 그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짐짓 모른 척 잡아다 놓고 시치미 딱 떼듯 진전시켜나갈 뿐이다. 왜 저것이 저 자리에 놓이게 된 건지, 대체 저 사람의 능력이 어디서 발생한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적 관점을 지속한다면 스스로 자폭할 가능성이 크다. <플래닛 테러>는 그저 영화가 깔아놓은 난장판을 의식 없이 즐겨야만 합당한 이벤트에 가깝기 때문이다.
스스로 수준 이하를 표방하지만 엄밀히 살피자면 <플래닛 테러>는 영리한 셈법으로 다양한 감정적 체험을 유도하는 수준 이상의 오락물이다. 불현듯 뭔가 튀어나올 듯한 상황을 통해 가열된 긴장감은 강도 높은 고어적 잔혹함을 통해 폭발되기 일쑤지만 긴박해 보이는 상황과 정면으로 대치된 도전적인 유머가 도처에서 발견된다. 잔혹성을 바탕으로 한 긴장감과 그런 상황을 배반하듯 촌티 날리는 유치함을 빙자한 유머감각은 <플래닛 테러>를 이끄는 평형감각에 가깝다. 물량 공세를 아끼지 않는 총격씬과 함께 액션의 화력도 단연 화끈하다. 또한 <데쓰 프루프>를 통해 이미 한차례 체험한 관객도 있겠지만 스크래치가 난무하고 화질의 상태를 극악하게 조작함으로써 ‘그라인드 하우스’의 체험을 이색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플래닛 테러>의 싸구려 유희에서 화룡정점을 이루는 코스는 포스터부터 눈길을 끄는 체리 달링(로즈 맥고완)의 아크로바틱 액션이다. 인간형 범용결전병기까진 아니지만 그 자체만으로 강렬한 포스를 뿜어내는 기관총 다리로 무장한 관능적인 그녀는 단연 <플래닛 테러>의 최종병기다. 단지 고고댄서였다는 이유만으로 저렇게 화려한 몸놀림을 보일 수 있는가, 다리에 장착된 기관총이 어떻게 자유자재로 발사될 수 있는가, 란 의문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 황당한 액션에 온몸으로 호응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능청스럽게 멀둔 중위 역으로 등장해 흉물(?)로 분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브루스 윌리스와 냉정한 의사지만 의처증이 심한 싸이코 근성을 지닌 윌리엄 박사 역의 조쉬 브롤린, 그리고 자신의 성기가 녹아 내리는 와중에도 혐오스럽게 섹스에 집착하는 광기어린 연기를 펼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특별한 출연까지, 배우들의 헌신적 열연은 <플래닛 테러>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특별한 카드로서 제각각 유효하다.
<플래닛 테러>는 지독하게 고의적이지만 명백히 순수한 의도를 담고 있다. 농염한 스트립 댄서의 전신을 적나라하게 비추며 떨어지는 앵글과 찢겨지고 터져나가는 인간의 육체를 정면에서 과감하게 비추는 샷이 말해주듯 <플래닛 테러>는 지극히 불결하고 혐오스러운 것들을 거리낌없이 비추고 이를 통해 직설적인 유희적 욕망을 숨김없이 들춘다. 명품을 표방한 싸구려가 널린 판국에서 <플래닛 테러>는 싸구려 유희의 정체성을 과감히 드러내고 스스로 즐긴다. 당신은 그저 이 순수한 싸구려 유희 앞에 앉아 염치 따윈 잊고 낄낄거리다가 영화가 끝난 뒤, 점잖게 극장을 빠져나가면 그만일 뿐이다.
TIP_<그라인드 하우스>에는 4편의 페이크 예고편이 함께 담겨있다. 하지만 이 중, 로드리게즈 감독이 연출한 <마쉐티>만이 <플래닛 테러>의 인터내셔널 버전에 포함됐을 뿐이다. 현재 <데쓰 프루프>와 <플래닛 테러> 인터내셔널 버전을 수입한 '스폰지'에서도 나머지 세 개의 예고편을 정식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결국 국내 관객에게 공개되지 못한 나머지 세편의 예고편은 미싱 릴(Missing Reel)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발빠른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나머지 예고편을 이미 봤거나 보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겠지만.
2008년 7월 4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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