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가 속속 3편까지 이어지며 할리우드 영화의 ‘미드’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90분 이내의 상업 영화를 만나는 건 오히려 반가운 일이 되어 버렸다. <어웨이크>가 그런 예다. 할리우드의 장기, 그러니까 소재에 대한 군더더기 없는 집중력을 보여준다. 물론 이의 반대말은 ‘감독의 야심 없음’일테지만.
<어웨이크>이는 ‘마취 중 각성(Anesthesia awareness)’을 중심 소재로 취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비슷한 소재로 작년 여름 개봉했던 <리턴>과 비교하며 표절 운운한다면 맹목적인 ‘영화애국주의자’임을 자박하는 꼴이 될 공산이 크다. 그 만큼 두 영화는 소재를 다루는 측면이나 방법론의 온도 차는 꽤나 크다. ‘수술 중 각성’을 당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 그 끔찍한 정신적 외상을 간직한 연쇄살인범을 감추기 위해 <리턴>은 플롯을 배배꼬고 반전을 마련하는 ‘후더닛(whodunit)’ 구조를 과시한 바 있다.
이에 반해 호불호가 갈리지 모르겠지만 <어웨이크>는 수술 이후와 그 직후,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오고간다. 주인공은 살해 음모에 의해 의도적으로 ‘수술 중 각성’을 경험하는 기업계 큰 손 클레이(헤이든 크리스텐슨). 선천적으로 약한 심장을 가진 그는 남편 없이 키운 아들에게 과잉애정을 쏟는 어머니(레나 올린)의 만류를 뿌리치고, 친구인 외과의사 잭(테렌스 하워드)에게 수술을 받는다. 하필 비서이자 연인인 샘(제시카 알바)와 ‘급결혼식’을 올리던 그 날 밤에.
<어웨이크>의 생살을 가르는 수술 장면은 회상으로 처리된 <리턴>과 달리 현재진행형이기에 그 강도가 곱절은 더 세다. 소재의 이점을 한층 살린 포석되겠다. 할리우드 치고 허접해 보이는 수술대 위의 ‘더미’가 눈에 거슬리지만 ‘마취 중 각성’의 고통은 클레이의 내레이션으로 인해 배가된다. 중반 이전에 배치된 이 수술 신은 클레이가 일찌감치 죽게 되면서 도대체 어떻게 내러티브를 이끌고 갈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은 따로 있다. 그 수술로 인해 각성된 클레이의 의식이 과거와 현재를 부지런히 오가며 도대체 자신을 살해한 이 음모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추리해 나간다는 것.
거창하지도, 대단히 독창적이지도 않은 <어웨이크>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곁가지 없이 소재에 충실하기. ‘마취 중 각성’을 겪은 클레이의 분노가 기억을 되살려 ‘권선징악’의 마무리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유체이탈과도 같은 경험을 하는 클레이의 궤적이 ‘안드로메다’행 아니냐고? 할리우드를 무시하지 마시라. 의식을 잃은 클레이의 기억을 따라가는 행보는 내적 리얼리티를 훼손하는 수준은 아니니까. 또한 간결한 몇 몇 신을 통해 범인을 암시한다거나 친구 잭의 회고조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오프닝도 장황하지 않게 반전을 구성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다시 결론은 집중력이다. 적당히 머리 좀 쓰게 하고, 수술 장면에서 소재를 과시하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매끄러운 편집을 보여주는 <어웨이크>는 오랜 시간 축적된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노하우를 힘 안들이고 과시한다. 소란스런 음향이나 호러영화 방불케 하는 카메라 워킹으로 겁을 준다거나 범인 감추기용 플롯 비틀기로 일관하는 한국 스릴러들의 피로감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 레나 올린이나 테렌스 하워드 같은 연기파 배우들 또한 큰 공력을 들이지 않으면서 안정된 연기로 극을 뒷받침해 준다.
기호에 따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버거워하는 클레이의 정신적 외상이 사족과 같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후반부에 밝혀지는 범행 동기가 ‘자본주의 사회’의 최고의 척도라는 것도 단순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창하지 않더라도 기본에 충실한 할리우드 장르 영화, 84분의 단촐한 <어웨이크>를 눈여겨 볼 단 하나의 이유되겠다.
2008년 3월 25일 화요일 | 글_하성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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