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자체만으로 주제를 대변하는 듯한 <내사랑>은 사랑에 대한 달콤한 직설보단 사랑이 주는 감성적 여운을 품고 있다. 정확히 세 커플 반으로 이뤄진 7명의 남녀가 지닌 개별적인 사연을 토대로 완성된 <내사랑>의 옴니버스 구조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사랑이라는 은유적 관계를 직조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동시대의 삶은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덧없는 찰나의 인연이기도 하며 혹은 공교로운 계기로 엮이는 특별한 만남으로 주선되기도 하지만 결국 <내사랑>이 보여주고자 하는 궁극적인 인연은 사랑이라는 중력을 통해 완성되는 애틋한 사연의 주인공들이다.
<내사랑>은 아기자기한 제목으로부터 느껴지는 발랄한 예감과 달리 사랑의 달콤함을 만끽하기 보단 그 주변에서 쓸쓸한 그리움을 체감해야 하는 이들의 사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원(최강희)의 사진을 바라보는 세진(감우성)의 쓸쓸한 눈빛과 망설임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진만(엄태웅)의 표정을 앞세운 <내사랑>은 분명 무언가에 대한, 즉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그릇이다. 물론 그 와중에 애까지 딸린 정석(류승룡)에게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수정(임정은)의 직설적 구애와 오랫동안 묻어둔 짝사랑을 소주 한 병으로 기원하는 소현(이연희)과 지우(정일우)의 귀여운 풋내기의 고백도 겹쳐진다. 하지만 결국 <내사랑>은 사랑이라는 중력권의 밖에 선 이들의 이야기다. 단지 그것이 그로부터 멀어졌거나 혹은 접근하고 있다는 원근감의 진행적 변화에 차이를 형성할 뿐이다.
인물들의 개별적인 사연은 몇몇 캐릭터의 동선을 잠시 중첩시키거나 혹은 특별한 인연의 굴레를 형성시키며 우연성을 옴니버스의 형식미를 갖춰나간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내사랑>의 옴니버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다양한 삶이 나이를 불문하고 유일하게 포개지는 하나의 감수성, 즉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것은 같은 개기일식을 바라보는 시공간의 중력권 안에 놓인 다양한 인물들이 잠시나마 같은 행위를 하는 것처럼 각기 다른 삶을 살더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의 중력을 피할 수 없다는 감정 공동체에 대한 사연을 맞춰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풍성한 캐릭터를 전시하고 그로부터 풍만한 사연을 직조하는 옴니버스의 다양성 측면에서 보자면 <내사랑>은 나름대로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다. 또한 다양한 캐릭터가 형성한 각자의 에피소드를 오가는 동시간대의 다양한 사연들은 옴니버스의 입체적 감각을 어느 정도 구현한다. 동시에 사랑이란 주제의 본질을 통해 풍부한 사연의 가지를 치고 있다는 점도 다양성의 낯빛을 통해 이야기적 재미를 부여하는 옴니버스 영화의 장점을 구현할만한 그릇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과 함께 각자의 사연이 지니고 있는 감정적인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는 모양새를 띤다. 세진의 사연이 과거의 재현 방식임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사연은 온전히 현재를 바탕으로 과거의 어떤 예감을 추측하게 만든다. 사연을 통해서 시공간의 영역을 다양하게 확보하는 방식은 옴니버스 특유의 흥미를 가중시키기도 하지만 이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발생되는 반대급부적인 감수성과의 충돌을 야기하기도 한다.
특히 세진과 주원의 사연이 품고 있던 비극적인 예감이 발현되는 지점은 다른 사연들로부터 번져나가는 감정의 색채와 쉽게 중화되지 못하는 양상이다. 그로부터 발산되는 비극적 뉘앙스가 지나치게 감정의 과잉을 의도하고 있다는 것이 노골적으로 피력된다는 거부감도 작용하지만 그 전에 병렬 구조로 배치된 사연들의 무게감에 비해 과도한 양식으로 느껴지며 구조적인 조화에 균열을 형성하는 느낌을 준다. 특히나 이는 소현과 지우의 아기자기한 양상과 너무나 달라서 부적절해 보일 정도다. 사실 이는 그 중간에서 두 사연의 이질적 상황의 충돌을 보완해야 할 수정과 정석의 사연이 다소 부실하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는 캐릭터적인 문제라기 보단 이야기 스스로 몰입되는 감정의 뼈대가 다소 빈약한 까닭이다. 동시에 옴니버스의 자질적 요소를 충만하고도 그 디테일한 장르적 특성을 감각적으로 살리지 못한 것도 하나의 패인이다. 짧은 동선의 주조만으로 교집합을 형성하거나 사연의 일부를 중첩시키는 태도는 옴니버스라는 이야기 틀을 무색하게 만든다. <내사랑>은 차라리 개별적인 이야기로 사연을 떼어놓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결국 옴니버스라는 형식의 장점을 살리는데 실패했음이다. 단지 이야기 방식이 아닌 감정의 일관성을 토대로 구색을 맞춘 따름일 뿐이다.
물론 <내사랑>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다양한 표정을 품고 있다는 점 자체만으로 다양한 감상적 소통을 보여준다. 하지만 개별적인 감정의 깊이적 높낮이가 다른 사연들을 오가는 동안 감정적 맥락의 혼돈이 발생한다. 그건 슬픈 사연에도 그 무게감의 차이가 발생하는 까닭이다. 단순히 개기일식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내사랑>은 옴니버스라는 형식의 그릇만을 마련했을 뿐, 그 형식에 담길 이야기라는 재료를 선별하고 다듬지 못했다. 또한 문어체의 대사를 남발한 것도 피상적인 감상을 한몫 거든다. 다만 연말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에 만끽할 수 있는 기획 영화로서의 미덕 정도는 지니고 있다. 또한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주조한 사연의 개별적 재미에 집중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부여한다. 특히나 캐릭터에 배우 본래의 매력이 스며든 것만 같은 주원 역의 최강희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잘 구사했고, 이연희의 괄목할만한 성장도 눈에 띤다. 다만 정일우의 연기는 아직 많은 연기적 경험과 노력을 거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2007년 12월 13일 목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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