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마치 <친구>의 엇갈린 관계를 우정에서 애정으로 치환한 것처럼 보인다. 유년 시절에서 학창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된 인물의 서사를 짚어가는 방식은 곽경택 감독이 <친구>외의 작품에서도 종종 보여왔던 방식이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인물의 관계에 놓인 순수한 교감이 상황에 의해 엇갈리는 인연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은 <친구>와 유사하다. 또한 억센 부산 사투리를 지정학적인 정서로 활용하는 방식 또한 그렇다. 그래서 <사랑>은 곽경택 감독의 회귀 본능처럼 보인다.
명사형 제목처럼 <사랑>은 그 단어가 지닌 감정을 절절하게 끌어낸다. 그리고 그 감정의 절실함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비극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역설적인 인물의 관계가 조성된다. 순정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현실은 처절하게 내몰린다. <사랑>은 그렇게 낭떠러지 같은 현실로 인물을 내몰면서 그 감정의 지속성을 끊임없이 흔들어댄다. 분명 <사랑>은 그 속성의 결정체, 가장 원형적인 감정에 접근하며 그것을 영화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사랑>은 그것의 본심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감정에 순수하게 동화되긴 힘든 어떤 혐의를 지닌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인물의 처절한 몸부림은 그만큼 순수한 감정의 속성을 상대적으로 부각시키지만 그런 상황만이 그 감정을 증명할 수 있다는 어떤 강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사랑>은 남녀의 어떤 극단적인 형태로 극을 몰고 가며 종래엔 지극히 허구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극의 말미는 <사랑>이 지나친 낭만주의에 도취된 것이 아닌가란 의심까지 부른다.
물론 <사랑>은 확실히 곽경택 감독의 영화다. 근작 <태풍>에서 다소 지나치게 격양된 바는 있지만 <친구>로부터 이어진 남근적 뿌리에서 기반한 곽경택의 마초들은 성긴 부산 사투리마냥 제 성깔을 나타내고, 이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중후한 남성적 기운으로 장악한다. 그래서 <사랑>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곽경택 감독의 의지이자 동시에 장르적인 퇴보로도 읽혀진다. 항상 남초 현상을 보인 곽경택 영화의 캐릭터 비중은 로맨스를 다루고 있음에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분명 곽경택 감독은 남성 캐릭터의 내면을 세심하면서도 대담하게 끌어내는 반면, 여성 캐릭터는 사연을 만들어내는 것 이상의 내면적 깊이를 보여주지 못한다. 이는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중심인물인 채인호를 제외한 주변 인물 중,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치권(김민준)이 인상적인 악역을 선보일 때, 로맨스의 구심점이 되는 정미주(박시연)는 이야기의 성립을 위한 포석 이상이 되지 못한다. 배우의 연기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극이 인물을 매만지는 손길에서 무의식적으로 성별의 차별을 두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사랑>은 남성적인 가치관 안에서 아름답게 포장되는 감정의 속설을 무결점의 알맹이처럼 포장한다. 물론 그 감정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이 진짜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라고 받아들이긴 힘들다. 왜냐면 그것이 너무나도 자아도취적인 남성적 노스텔지어에서 사유화되고 갇혀있는 까닭이다.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는 그렇게도 처절하건만 감정의 깊은 폐부를 찌르지 못한다. 단지 그 처절한 상황에 고개를 끄덕이게 할 뿐, 진심으로 눈물흘릴 순 없게 만든다. 편중된 성역할의 낭만주의가 아쉽다.
2007년 9월 13일 목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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