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적인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그 충격으로 문제아가 된 케일은 수업 중, 자신을 지적한 교사가 아버지를 언급하자 우발적으로 주먹을 날린다. 결국 3개월 간의 가택연금에 처해진 케일은 비디오 게임과 TV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혈기왕성한 10대의 에너지를 소비하기에 3개월은 너무 길게만 보인다. 그러던 중, 옆집에 이사온 애슐리(사라 로머)는 소년의 욕구불만을 호기심 어린 염탐으로 돌리게 하며, 이는 결국 케일과 애슐리의 인연을 접속시키는 계기가 되지만 알아서는 안 될 정보마저 습득하게 한다. 그건 바로 자신의 이웃에 무시무시한 살인마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목격하게 되는 것.
<이창>과 <디스터비아>의 차이는 시대에서 비롯된다. <디스터비아>는 <이창>보다 반세기 동안 발전된 영상 기술을 대거 활용한다. 망원렌즈에 의지하던 제프리와 달리 케일(샤이아 라보프)은 고성능 망원경을 비롯해 디지털 캠코더와 휴대폰 카메라까지 동원한다. 아이튠즈(itunes)로 음악을 듣고 Xbox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젊은 포터블 세대로부터 펼쳐지는 <디스터비아>는 가볍고 충동적인 장난을 즐기지만 무모할 정도로 도전적인 세대의 기질을 영화의 감수성에 고스란히 반영한다.
<디스터비아>는 소년의 무료함에서 비롯된 관음이 의심스런 목격담으로 번져나가고 결국 진지한 행동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굴려나간다. 철부지 10대들의 발랄한 일상을 보여주던 전반부의 가벼움은 극악한 긴장감에 둘러싸인 채 무겁게 내려앉는 후반부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디스터비아>는 가볍지만 날렵한 10대의 감성을 영화적 화법으로 동원한다. 소년의 놀이에 불과했던 엿보기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이웃에 대한 혐의로 번지며 세밀한 수사망을 동원하게 된다. 물론 ‘잠복 근무엔 도넛과 커피가 필수’라는 애슐리의 말처럼 그 순간까지도 장난스러움을 버리지 못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결국 위험한 이웃을 자극하는 수순을 밟고 <디스터비아>의 본격적인 서스펜스로 돌입하는 계기를 다진다. 마치 위선으로 가린 악의 정체처럼 <디스터비아>는 가벼운 농담과 장난끼로 관객을 안심시키다가 돌발적으로 정체를 드러내는 긴장감으로 순식간에 돌진한다. 동시에 <디스터비아>는 관심이 단절된 이웃의 정체를 들춘다는 점에서 이웃 커뮤니티에 대한 소통의 필요성을 은연중에 어필하는 시선이란 점도 흥미롭다.
사실 전반적인 이야기의 구조는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지만, 순발력있는 전개로 인해 그 타이밍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시종일관 긴장감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스릴러적 정공법에 비해 가볍지만, 징후의 긴장감에 무겁게 짓눌리기보단 리드미컬한 전개와 재기 발랄한 캐릭터들로 인해 한층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유쾌함에 게릴라적인 긴장감을 겸비한다. 또한 <디스터비아>는 얼마 전, <트랜스포머>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샤이아 라보프를 비롯해 영화를 가득 채운 할리우드 유망주들만큼 신선함이 가득하다. 물론 그것이 히치콕의 뛰어난 업적에 비해 한 수 아래라 할지라도, 시대적 트렌드를 반영한 영리함에 탄력적인 스릴을 가미한 <디스터비아>의 잘 빠진 매력은 영화적 즐거움을 모자람 없이 제공한다.
2007년 8월 20일 월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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