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뒤면 알게 된다. 그가 맞서야 할 상대가 누군지, 그건 바로 자신이다.-극 초반에 영화 스스로 이를 드러내니 스포일러는 아니다.- 브룩스는 하나의 육체에 두 개의 인격이 상주한 사람이다. 자상한 가장, 성공한 사업가로서 존재하는 브룩스는 살인 중독에 가까운 마샬(윌리엄 허트)이란 인물과 홀로 끊임없이 대화한다. 그리고 그의 충동질은 그의 내면에 자리한 살인 욕구를 자극하며, 결국 2년 동안 끊었던(?) 살인을 자행하게 한다. 그래서 그는 2년만에 살인 현장에 피 묻은 (장갑을 낀) 손가락 자국을 남긴 썸프린트(thumbprint) 킬러로 돌아온다.
<미스터 브룩스>는 장르에 내재된 기본 공식에 밀접하게 접근하기보단 인물에 대한 관찰로 변주하며 색다른 감상을 끌어낸다. 상황의 몰입보단 인물에 몰입하며, 사건의 진행보단 심리의 흐름에 집중한다. 일단 제목처럼 영화 그 자체를 대변하는 브룩스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관련 인물들이 배치되며 그 인물간의 중첩을 통해 사건은 진행되고 확장된다. 하지만 그에게 접근하는 앳우드 형사(데미 무어)는 <미스터 브룩스>의 이야기를 만드는 브룩스의 동선과 평행한 개별적인 동선을 형성하면서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마지막까지 인물간의 직접적인 교차로는 발견되지 않지만 두 인물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공간적 간격은 심리적인 거리감을 형성하며 이는 동시에 스크린과 객석의 미묘한 신경전으로 번진다. 전형적인 장르의 공식을 예상한 관객과 개별적인 변주를 꾀하는 작품 사이의 간격이 발견된다.
<미스터 브룩스>에서 주워담을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은 바로 미스터 브룩스라는 인물 자체에 있다. 살인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주변인들은 절대 살인하지 않는 이성적 제어가 가능한 그는 흥미로운 살인마다. 살벌한 기운으로 관객을 제압하곤 하는 동류의 절대 악인들에 비해 중독자 모임에도 착실히 참석하는 소박한 일상을 지닌 그는 모종의 동정심마저 느끼게 하는, 관객에게 친밀하게 느껴질 법한 살가운 악인이다. 또한 딸이 벌인 찰나의 실수를 가리기 위해 취향에 맞지 않는 방법론을 택하게 하는 부정은 그의 인간미마저 느끼게 할 정도다. 무엇보다도 케빈 코스트너의 연기는 그의 지난 업보(?)들을 잊게 할만큼 인상적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밋밋한 데미 무어의 연기가 너무나도 선명할 정도다.
물론 비약적인 설정이 부분적으로 눈에 띠기도 하며, 인물이 지닌 심리적인 추이가 낯선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발견된다. 하지만 긴장감을 조성하는 장르적 연출은 순간마다 빛을 발하며 마지막 순간의 응집력은 대단하다. 무엇보다도 <미스터 브룩스>는 매력적인 악인이라는 호칭 이상으로 흥미로운 관점의 살인마를 탄생시킨 작품으로 기억될만하다. 자신의 지독한 취향을 이겨내지 못하는 살인마의 소박한 심성이 측은하게 느껴지는 건 분명 <미스터 브룩스>가 지닌 즐거움이며 <미스터 브룩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2007년 8월 17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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