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말 그대로 전설이 된 TV 시리즈 ‘전설의 고향’에서 모티브를 얻은듯한 <전설의 고향>은 형체를 드러내는 형태로서의 공포보단 드라마적 전개를 통한 공포라는 감정의 규명에 비중을 뒀다. 결국 시각적인 효과보다는 극의 전개로부터 베일이 벗겨지는 과정에 힘을 싣는 것으로 시각의 강박을 벗어나려 했음이다. 하지만 오히려 효과는 반전된다. <전설의 고향>은 <장화, 홍련>과 마찬가지로 공포의 외피에 정서적 내피를 두른다. 자매의 비극은 감정에서 비롯된 사연에서 빚어지는 것이고, 어머니의 모정 편중 현상이 그 위에 덧씌워진다. 물론 그것을 <장화, 홍련>의 것이라고 단정짓는 건 온당치 못하다. 그건 <장화, 홍련>조차도 전래 동화에서 추출한 소스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전설의 고향>이 벤치마킹한 고전물이란 장르적 요소를 따르기 위한 이야기 전개였을 것이다.
<전설의 고향>은 공간을 이용한 자극 효과에 능숙하다. 마치 외길 같은 복도를 지날 때나 적막한 산길, 야심한 밤의 곳간과 음산한 서낭당의 기운은 <전설의 고향>이 고전적인 공간에서 잡아낸 공포의 축조물들이다. 그리고 그런 공간의 귀퉁이에서 시야적 맹점을 확보하며 형체를 드러내는 소복 귀신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게 한다. 특히나 소연의 어머니(양금석)가 소연(박신혜)의 머리를 빗질하는 장면은 <전설의 고향>에서 가장 탁월한 비명을 부른다. 하지만 <전설의 고향>은 전반적인 공포의 깊이가 얕다. 비명은 발견되지만 유지되지 않고 흩어진다. 돌발적인 영상의 경직은 지속적인 가위 현상으로 눌리지 못하고 쉽게 풀려버린다. 모정에 대한 질투와 애정의 결핍에서 비롯된 한이란 정서가 공포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것과 사극이란 환경의 신선함은 좋지만 공포라는 장르의 특성을 극대화시킬만한 추임새를 넣지 못한 건 장르적인 실패다. 또한 인물간의 얼개와 감정적 구도가 실제론 단순명확하지만 다양한 인물을 통해 미로 같은 이야기 구조를 만든 건 입체적인 내러티브를 형성하고자 했음이었겠지만, 이는 순도 높은 공포의 본질을 훼손하는 요인이 된다. 연민을 자극하는 페이소스와 공포를 자극하는 서스펜스의 합방 의식은 눈길을 끌지만 깊은 잔상을 남기지 못하고 순간적으로만 번뜩인다.
<전설의 고향>은 지속보다는 순간적인 효과에서 유용하다. 무엇보다도 사극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괴기스러운 분위기는 <전설의 고향>이 지닌 독점적인 미덕임이 분명하다. 다만 제목이 부르는 단순한 기대감, 즉 기교를 통해서가 아닌 존재감 자체로서의 공포를 소환하지 못한 건 아쉽다. 탈(脫) 사다코를 지향했을 캐릭터적 고민도 차별화에 도달하지 못하고 이미지의 단순화에 멈춘 것도 강박이 된다. 다만 감성이란 토대를 활용해 한국형 공포물의 틀을 짜려한 시도는 주목 받을만하다. 시리즈물로서의 가능성도 보이지만 흥행의 뒷심이 받쳐줘야 가능한 프로젝트라는 것도 하나의 강박이다. 그 가운데 1인2역을 오가는 박신혜의 성숙한 연기는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2007년 5월 16일 수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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