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사랑이 빚은 원죄에서 비롯된 씻을 수 없는 죄의식. <뷰티풀 선데이>는 사랑의 이미지를 더럽힌다. 간절한 사랑은 지독함으로 점철되고, 애절한 감정은 병적 집착으로 소통된다. <뷰티풀 선데이>는 인물간의 심리와 이야기 구성의 일부분을 가림으로써 관객의 맹점을 확보한다. 이는 마지막 반전을 위한 장치적 효과이자 게임의 법칙을 따르는 영화의 의도이다. 하지만 영화가 겨누고 있는 궁극적 타깃은 게임이 아니라고 한다.
<무간도>의 옥상 씬이 떠오르는 첫 장면. 민우(남궁민)에게 총을 겨눈 박형사(박용우), 그리고 민우의 한마디. “당신은 한 시간 안에 날 죽이게 될 거야.” 여기서부터 <뷰티풀 선데이>는 관객에게 물음표 하나를 무심하게 내던진다. 사실 이 영화는 눈속임에 가깝다. 스포일러에 가깝기에 발설할 수 없는 결말에 다다르면 <뷰티풀 선데이>가 지향했던 반전의 묘미가 무엇이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두 남자의 맞물리지 않는 이야기의 구도가 평행적으로 지속되었고 어째서 그 상태를 유지해야 했는가에 대한 해답도 드러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될 뿐, 극적 쾌감에 다다르진 못한다. 사실 스릴러를 표방한 영화들이 장르적 기대감을 붕괴시키게 되는 사연의 팔 할은 긴장을 극대화시켜가던 과정만 못한 결말의 연약한 속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뷰티풀 선데이> 역시 마찬가지다. 의문을 증폭시키던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꺼내드는 회심의 카드가 미약하다는 사실은 <뷰티풀 선데이>가 의도했던 가장 큰 무기가 약점으로 돌변하는 순간이 된다. 또한 결말의 무게감이 다소 연약해 보이는 건 진행되는 이야기가 매끄럽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다. 영화에 관객이 스스로 몰입해주지 않는 이상,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이야기의 흐름은 관객의 이해를 편하게 도모하지 못한다. 물론 애초에 쉽지 않은 방식의 내러티브를 택했다는 핑계를 둘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론 화자의 설득력이 명료하지 못한 탓에 가깝다. 또한 시간의 전후관계를 적당히 가림으로서 관객을 두 인물의 관계적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 의도는 영리하지만, 의도를 충분히 활용했다고 말하기엔 탐탁지 않다. 단지 영화가 지향했던 목적에 대한 이해가 관찰될 뿐, 그것을 본래 의도하던 충격에 다다르진 못하는 것. 결말에 대한 다양한 단서들도 명확하기 보단 불필요하게 어지럽다.
“죄를 지은 착한 사람을 사랑하겠어요? 죄를 짓지 않은 나쁜 사람을 사랑하겠어요?” 수연(민지혜)에게 던지는 민우의 물음은 <뷰티풀 선데이>의 근원지점인 이율배반적 태도와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가는 죄의식에 대한 탐구적 열의를 드러낸다. 두개의 평행적 이야기 진행이 하나의 충돌로 매듭지어질 때, 그 불분명한 근거의 속성은 정체를 드러낸다. 하지만 명쾌한 현답은 아니다. 결국 관객이 짊어져야 되는 것은 명쾌하지 않은 속내에 대한 짓눌림 뿐이다. 물론 강간과 같은 인면수심의 범죄가 애정과 결박되어 사유당하는 의도는 참신한 발상을 환기시킨다. 또한 박용우와 남궁민의 연기는 심리적 강박증을 느끼게 할 만큼 탁월하다. <뷰티풀 선데이>가 좀 더 나은 결과물이 될 법했을 것이란 예감은 바로 그런 근거들 때문이다. 좀 더 명확하고 간결하게, 내러티브의 가지치기가 능숙했다면 극적 쾌감과 더불어 이야기의 무게감이 동반 상생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2007년 3월 14일 수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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