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과 암투, 모종의 거래까지 흔히 ‘조직’을 다룬 영화가 지닌 모든 상황을 가지고 있지만 내면엔 따듯한 가족애가 흐른다. 동네 양아치들을 혼자 정리해버릴 정도로 거친 남자 태식(김래원)을 사랑으로 감싸 안은 덕자(김해숙)는 그를 친아들처럼 대하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희망수첩’에 적은 일들을 소중히 여기며 행동에 옮기는 영화 초반까지 관객은 <해바라기>에서 뒤통수를 칠만한 뭔가는 없다고 단정짓게 된다.
영화의 반전조차도 눈치 빠른 관객들이라면 알아챌만한 정도의 수준에서 머문다. <해바라기>가 지닌 강점은 뻔하지만 진심을 울리는 감동코드를 덤덤히 보여준다는데 있다.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가 중심을 잃어버리는 흔한 실수 없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한 남자의 복수를 현실감 있는 내러티브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완성도 있게 만듦으로써 절망 끝에는 희망이, 모든 게 이루어질 것 같은 그 영원한 바램도 무너질 수 있다는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영화 내내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이 얼마나 합법적으로 치사한 부류인지, 자본주의적 사회를 악용하는 지역유지의 정치적 야심이 어떤 식으로 포장 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대한민국 사회계층의 허구를 드라마틱하게 파헤치는 진실까지 무리 없이 담아냈다.
과거 어두운 과거를 지녔지만 가슴으로 뉘우치며 결국에는 처절한 복수에 나서는 비운의 남자 캐릭터를 눈빛으로 연기해낸 김래원의 변신은 <해바라기>속 최고의 즐거움이다. 3000:1의 경쟁률을 물리친 허이재의 발랄함과 농익은 어머니의 감정을 여실히 드러낸 김해숙의 앙상블은 갈등의 요소를 적재적소에 표출해낸 조연들까지 이어진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으로 소소한 일상을 통한 사랑의 감정을 성공적으로 다뤘던 강석범 감독은 ‘사랑’을 넘어선 핏줄의 연대감은 타고 나지 않아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진한 감동으로 완성했다.
2006년 11월 14일 화요일 | 글_ 이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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