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계의 거물이자 패션계의 여왕으로 군림하는 자신의 상사 미란다 (메릴 스트립)의 어시스턴트는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자리지만 태풍이 불어 닥치는 날씨에도 비행기를 띄워야 하며 그녀의 쌍둥이 딸들의 숙제도 대신해야 한다. 현대판 시녀와 다름없는 세탁물서비스와 점심식사 준비는 기본. 그러나 그것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자신의 이름을 시종일관 바꿔 부르고, 경멸하는 상사의 태도다.
온갖 명품과 일류 스텝들에게 둘러 쌓여 최고의 잡지를 만들어내는 미란다의 모습은 텃세 심하고 히스테리컬한 패션계에서 살아남은 성공적인 ‘롤모델’로 그려지기 보다는 ‘악마’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녀가 벨트 색깔을 구분 못하는 앤디에게 던지는 따끔한 일침은 인생의 선배로서 자신의 직업에 긍지를 가진 ‘멘토’의 모습이다. 현지 개봉 당시 패션계를 지나치게 옹호했다는 비판은 원작이 실제 보그 편집장의 조수출신이라는 사실과 맞물려 화두에 올랐지만 영화적 장점만을 고루 갖춰 완성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한없이 가볍게 즐기다가도 알차게 극장 문을 나설 만큼 교훈적이다.
특히, 학창시절부터 사귄 익숙한 남자친구와 더 넓은 사회에서 만나는 다양한 경험들, 거기서 만난 멋진 남자들에게 느끼는 복잡미묘한 감정은 성공에 대한 갈망에서 오는 묘한 동료애와 함께 여성이라면 한번쯤 고민해본 원초적 갈등요소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가정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는 미란다의 모습은 ‘엄마’,’아내’,’상사,’ 그리고 ‘나 자신’이란 수많은 이름과 병행해야 하는 이 시대 모든 여성들의 현실을 잠시나마 보여준다. 겉으로 보여지는 사회적 우월함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주는 것이 아님을 재확인시키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이미 많은 여성들이 겪었던 익숙한 사실을 ‘패션’이란 달콤한 소재를 가지고 대중의 기호에 꼭 맞는 ‘오뛰 꾸뛰르 (Haute Couture)’로 멋지게 승화시켰다.
2006년 10월 26일 목요일 | 글_이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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